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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72754626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10-07-26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날이 갈수록 다른 사람으로 오해받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예전에 언제,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계기로 만났는지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나를 어디에서인가 예전에 보았다는 느낌에 빠진다. 얼굴도 도무지 모르고 이름도 마찬가지지만 나도 예의상 아는 척하며 기꺼이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썼고 우리는 함께 인연을 맺었을 법한 장소와 상황을 이것저것 떠올려본다. 한참 후에야 우리 사이에 공통된 어떤 기억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이르면 서너 번 어깨를 으쓱거리거나 몇 차례 머쓱한 미소를 나누고, 나는 그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어서 미안하다고 비굴한 사과를 한다. 그런 다음 우리는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인사하고 각자의 길로 걸음을 계속한다. (……) 가끔 나를 오인한 사람이 범상치 않고 오히려 평범함과는 정반대로 보이는 인물인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은 기꺼이 사귀고 싶다. 나 자신이 아니라 차라리 오인된 사람이었다면 비록 잠깐일망정 무엇인가 덕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이토록 다정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실망시킬 만큼 나는 매정하지도 않고 이런 드물고 드문 재회의 기쁨을 그에게서 앗아갈 권리가 내게 없다고 느낀 나머지 근처 술집으로 가서 카운터에 팔을 괴고 이를테면 소식이 끊겼던 그 세월 동안 서로 어떻게 변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스타일 때문에 처음부터 불편해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귀찮게 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는 그녀의 그 냉혹한 표정, 눈에서 반짝이기 시작하는 그 눈물을 도무지 설명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녀의 입이 열렸다. “이제야 돌아왔군”이라고 그녀가 냉랭하게 말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구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돌아오다니.” “네? 무슨 말인지?”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고 나는 얼이 빠진 채 서 있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손끝으로 그녀의 팔꿈치를 슬쩍 건드렸다가 결국 그녀를 품 안에 안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다. 나는 그녀를 거실까지 데리고 가서 그녀의 소파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녀가 도무지 눈물을 거두지 못해서 나는 물 한 잔을 가져와 그녀 곁에 앉았다.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고 “자, 자……”라고 했다. 그녀는 무엇인가 내게 말하려 했지만 긴 한숨과 울음과 훌쩍거리는 소리 사이에 간간이 끊겨 나오는 단어들의 연속일 뿐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감정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그러고도 꽤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눈물을 훔쳤다. 목이 메거나 숨이 막히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되자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내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마치 엄청난 은총을 내리듯 내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박도 하지 않았다. 아마 그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사는 거야”라고 그녀는 꼬집었다. 그것은 단지 한 번, 아니 기껏해야 두서너 번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낮잠 자다가 제때 깨지 못한 것이 범죄라도 되는가?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두고 사는 거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라고 그녀는 되씹곤 했다. “제발 과장하지 마. 응?” 이런 욕을 먹는 이유는 예전에 딱 한 번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아닌 다른 아이들을 집에 데려온 적이 있기 때문인데, 내가 보기에는 그 아이들도 아주 귀여웠다. 그게 자기가 낳은 아이가 아니더라도 별로 밑질 게 없었는데도 그런 것이 그녀에게는 중요했나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아빠”라고 소리치며 냅다 뛰어와 내 품에 안긴 것이 내 잘못인가? 아이들이야 모두 생긴 게 비슷한데 집에 데리고 오면서 아이들을 돋보기로 검사라도 하란 말인가? 신분증이라도 보여달라고 해야 하나? 자기 아버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나만큼이나 욕을 먹어야 하지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