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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73373079
· 쪽수 : 387쪽
· 출판일 : 2010-10-30
책 소개
목차
전체 12장
작가약력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노파가 구슬리듯 대학생을 재촉하고 있었다.
“편재(遍在)라는 것이 되는 마을입니다.”
대학생이 가까스로 입을 열고 있었다.
“편재라니.”
“사전적으로는 두루 퍼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학동에서는 좀 다른 의미로 쓰여집니다. 저 자신이 모든 사물과 두루 합일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제가 모래알이 될 수도 있고 물방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될 수도 있고 민들레가 될 수도 있습니다. 태양이 될 수도 있고 바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가 직유(直喩)의 마을이라면 거기는 은유(隱喩)의 마을이죠.”
아이가 돌아온 것은 사실이었다. 아이는 자기 집 마당 가운데 서 있었다. 백주에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물에 빠져 죽었던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아니라면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이제야 나타났단 말인가. 마을 사람들은 아이를 둘러싸고 쉴새없이 질문의 소나기를 퍼부어대고 있었다. 햇빛이 우라지게 좋은 봄날이었다. 무너진 토담 너머로 진달래가 눈부시게 피어 있었다.
“저 애는 귀신이 아닐세. 그림자를 보게. 귀신은 영체이기 때문에 그림자가 없는 법이지. 뿐만 아니라 귀신은 절대로 햇빛 속에서는 그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다네. 저 애는 귀신이 아닐세. 집문서를 걸고 내기를 하자고 해도 자신이 있네.”
“그런데 머리카락이 왜 저렇게 세어버렸는지 누가 한번 물어보게.”
“물어본다고 어디 속 시원히 대답이나 해주던가. 원체 생각이 깊고 말수가 적은 애라 도대체 심중에 뭐가 들어앉아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마을 사람들은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아이는 홍원댁의 말대로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 있었다. 회색 머리카락이나 까만 머리카락은 단 한 올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는 마치 모태 속에 들어앉아 있을 때처럼 평화롭고 온화한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그것이 본래의 상태였다. 지금까지 오랜 잠속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았다. 기억이 선명치는 않았지만 몹시 어수선한 꿈을 꾸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슬픔 같은 것이 꿈의 여운처럼 잠시 아이의 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사라져 갔다. 어디선가 푸득푸득 새의 날개짓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귀에 익은 소리 같았다. 눈을 뜨니 하늘이 보였다. 눈부신 구름들이 한가롭게 떠 있었다. 금빛 날개를 가진 새들이 아이의 주위를 호위하듯 선회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새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