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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인의 통과의례와 생사의식

동아시아인의 통과의례와 생사의식

전남대학교 아시아문화원형연구사업단 (지은이)
전남대학교출판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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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인의 통과의례와 생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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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동아시아인의 통과의례와 생사의식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고고학/인류학
· ISBN : 9788975988103
· 쪽수 : 350쪽
· 출판일 : 2010-02-26

책 소개

‘생사관’과 ‘창세문화’를 키워드로 하는 아시아문화원형총서 3권. 이 책의 주요내용은 제1부 동아시아인의 삶과 통과의례로 고대 한반도인의 삶과 그 원형적 의의, 한국의 전통적인 일생의례, 우란분재(盂蘭盆齋)에 보이는 통과의례, 한자 ‘吉·凶’에 반영된 통과의례, 중국 납서족(納西族)의 상장의례, 한국설화의 죽음과 재생, 일본 아이누의 죽음의례, 일본의 신도식 상례를 다루었다.

목차

제1부 동아시아인의 삶과 통과의례

고대 한반도인의 삶과 그 원형적 의의____양회석
한국의 전통적인 일생의례____나경수
우란분재(盂蘭盆齋)에 보이는 통과의례____장춘석
한자 ‘吉·凶’에 반영된 통과의례____김태완
중국 납서족(納西族)의 상장의례____이주노
한국설화의 죽음과 재생____김자현
-<콩쥐팥쥐>설화를 중심으로-
일본 아이누의 죽음의례____최원경
일본의 신도식 상례____조아라
-신장제(神葬祭)의 비대중화를 중심으로-

제2부 동아시아인의 죽음과 생사의식

한국 현대시인 기형도 시의 죽음의식____엄영욱
중국 묘족(苗族)의 생사관____류창진
도연명(陶淵明) 시 <형영신(形影神)>의 생사관____최진희·양회석
『도노 모노가타리(遠野物語)』와 일본인의 이향관(異鄕觀)____김용의
오키나와(沖?)의 생사관____가리마타 게이치
-저승생활-
일본신화에 보이는 여신의 죽음____황명월
가면극에 나타난 한국인의 생사관____임세경
-해서탈춤을 중심으로-
중세 일본설화에 나타난 공포와 괴이____최가진
-백귀야행(百鬼夜行)의 사례를 중심으로-

저자소개

전남대학교 아시아문화원형연구사업단 (엮은이)    정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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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고대 한반도인의 삶과 그 원형적 의의

양회석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William Wordsworth(1770-1850)

若失却童心, 便失却眞心, 失却眞心, 便失却眞人.
≪焚書?童心說≫
李贄(1527~1602)


1. 머나먼 옛날, 한반도 일대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삶은 어떤 양상이었을까? 또는 그들이 이상으로 여겼던 삶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본 논문은 중국 고대의 유관 기록을 통하여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그 다음은 논의를 확대하여, 이러한 고대 한반도인의 삶이 공간적으로 고대 동북아시아 차원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을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아울러 시간적으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만약 인류의 역사를 개체의 일생에 비유한다면, 고대 인류는 ‘어린이’에, 현대인은 ‘어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어른이 어린이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현대를 고대로 되돌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럴 필요도 없음은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머나먼 옛날을 주목하는 것일까? 물질문명의 고도 발전으로 요약되는 현대에 사는 인류가 반드시 고대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대인은 물질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예기치 않은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어른이 되면서 어린이 시절의 해맑은 웃음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동방 또는 동북아에 이상향이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었다. 중국의 역대 문헌은 동방 어딘가에 ‘군자국(君子國)’, ‘장수국(長壽國)’, ‘불사국(不死國)’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반도 역시 중국에서 보면 동방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믿음은 고대 한반도인의 삶과 관련되는 것은 아닐까? 흥미롭게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줄 실마리를 뜻밖에 공자(孔子)가 제공해준다.

2.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킬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했던 공자는 차라리 어디론가 떠나고자 했다. <논어>의 다음 문구들은 이 무렵 공자의 절실한 심정을 잘 보여준다.

선생님(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행하여지지 않아,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넌다면, …” (子曰, 道不行, 乘?浮于海, … <公冶長>)

선생님(공자)께서 구이에 거처하고 싶어 하셨다. 누군가가 여쭈었다. “누추할 터인데, 이를 어찌 하시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답하셨다. “군자가 거기에 살게 된다면/살았으니/살고 있으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子罕>)

두 문구는 동일한 맥락에서 나온 발언으로 파악되고 있다. 즉, 자신의 정치적 도가 행해지 않으니 차라리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는 의미이다. 구이에 대해서 마융(馬融)은 “동방의 이(夷)로, 아홉 종이 있다”라 하였다. 뒤이어 지역별로 또는 부족별로 ‘아홉’ 종을 나열하는 주석이 나오지만, 고대 한어에서 숫자 ‘九’는 ‘매우 많음’을 나타내거나 ‘길함’ 또는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허수(虛數)이므로, 구태여 아홉이라는 숫자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구이는 동이 또는 그들이 사는 지역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일반적으로 동이는 선진(先秦) 시대, 중국의 산동(山東)과 요동(遼東) 그리고 한반도 등지에 거주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 지역은 지석묘(支石墓) 분포 지역과 대체로 일치하거니와, 공자가 배를 띄워가고자 하였으니 여기에서의 구이는 일단 한반도 일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점은 이어지는 논의에서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역대로 논란이 되고 있는 대목은 ‘군자’가 누구를 지칭하느냐 이다. 대체로 세 가지 관점으로 정리된다. 첫째는 공자 자신을 가리킨다는 관점, 둘째는 공자 이전의 인물인 기자(箕子)를 가리킨다는 관점, 그리고 셋째 ‘구이’를 가리킨다는 관점이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본고는 마지막 관점을 지지하는데, 물론 충분한 근거가 제시될 것이다.
후한(後漢) 마융(馬融, 79~166)은 “군자가 거주하는 곳이면 교화되기 마련이다.(君子所居則化.)”라고 주를 달고 있는데, 여기에서 군자는 공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관점은 먼 후대에도 보이지만, 특히 “파출백가(罷黜百家), 독존유술(獨尊儒術)”, 즉 “백가를 배척하고 오직 유교의 학술만을 추존함”으로써 유교를 독점적 국가 이데올로기로 정립하고자 하였던 한(漢) 시기에 널리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관점에 따르면, “君子居之”는 “군자인 내(공자)가 그곳에 살게 되면”으로 번역될 것이다. 천하는커녕 자신의 출신지인 노(魯)에서조차 뜻을 펴지 못한 공자가 전혀 낯선 ‘구이’에 가서 교화를 구현하겠다고 호언장담하였다는 사실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은 한나라 당시에 이미 제기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인습적인 사고에 반기를 들었던 사상가 왕충(王充, 27~100?)이다. 왕충은 우선 당시 그러한 인식이 보편적이었음을 명기하고서,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제하(諸夏)에서도 도가 실현될 수 없는데 낙후한 이적(夷狄)에서 가능한 것이겠는가? 우(禹) 임금도 나국(裸國)에 의복 입는 것을 가르치지 못했는데 공자라고 구이를 군자로 만들 수 있겠는가? 실제로 갈 생각이 없으면서도 둘러댔다면 위언(僞言)이 될 터인데 그럴 리가 있겠는가? 등등, 조목조목 따져가며 비판을 가하고 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중국에서 정치적 포부를 실현할 수 없으니 한국이나 일본에 가서 시도하겠다는 말이 될 터이므로,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공자 설의 문제점이 인지되면서 그 대안으로 제기되었던 것이 이른바 기자조선(箕子朝鮮) 설이다. ≪한서(漢書)?지리지(地理志)≫에서 그 단초를 보인(이에 대해서는 뒤에 상술함) 기자조선 설은 후대에 접어들면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예컨대, 북송 정여해(鄭汝諧, 1126-1205)는 “조선이 구이 중의 하나이고, 기자가 일찍이 여기에 봉해졌으므로 ‘군자거지’라 한다.”라 하였다. 또 원나라 사람 하이손(何異孫)은 기자가 봉해진 뒤 그의 교화 덕분에 조선의 음식, 의관과 예악이 당시에 이르기까지 중원과 같아졌으니, ‘군자거지’는 기자를 가리키는 것이지 공자가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중심적’ 관점은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의 인식을 고스란히 답습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옛날 기자가 쇠망하는 은나라의 운수를 피하여, 조선으로 피난하였다. 애초 그 나라의 풍속은 알려진 바가 없었으나, 8조의 법을 시행하여 사람들에게 금지사항을 알게 하자, 마침내 마을에 음란함과 도둑질이 없어져서 대문을 밤에도 닫지 않았고, 완고하고 각박한 습속을 바꾸어 관대하고 대범한 법도로 나가게 되었다. 수백 년을 행해졌으므로 동이는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조심스러움이 기풍이 되어, 세 변방의 것과 다르게 되었다. 진실로 올바른 정치가 펼쳐지면 도의가 여기에 있게 마련인 것이다. 공자가 비분강개하여 구이가 살만한 곳이라 생각하자, 누군가가 그곳이 누추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그러자 공자가 “군자가 그곳에 살았으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 한 것도 거기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따름이다.

위의 기록에 따르면, 동이족은 원래 음란하고 도둑질을 일삼으며, 완고하고 각박한 습속을 갖고 있었는데, 기자가 8조의 금령을 시행함으로써 그러한 나쁜 점들을 바로 잡았다는 것이 된다. 또한 이러한 기자의 교화가 수백 년 이어진 결과, 서쪽 남쪽 북쪽의 세 변방 민족과 다른 기풍을 보유하게 되었고, 때문에 공자가 가서 살고자 하였다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미개한 변방 민족인 동이가 문명적인 중원 민족의 덕분으로 개화되었다는 논리이지만, 이는 고대 동북아시아의 실제 정황에 그다지 들어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부사년(傅斯年)의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에 따르면, 중국의 선진(先秦) 역사는 이(夷)?하(夏)의 경쟁의 역사로, 하(夏)?주(周)?진(秦)이 서방의 대표라면 이(夷)?상(商)?육국(六國)은 동방의 대표이었고, “동방은 경제가 좋기 때문에 문화가 우월하였고, 서방은 지리가 좋기 때문에 무력이 우월하였다.” 또한 일본의 저명한 학자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은 중국의 선사문화는 서방의 채도(彩陶)와 동방의 흑도(黑陶)에 의해 대표되므로, 부사년의 <이하동서설>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 학계에서는 기자조선의 실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거니와, 설사 기자라는 인물의 실존 자체를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중원문화가 미개한 동이문화를 개화시켰다고 보기보다는, 단지 중원에서 헤게모니를 잃은 동이문화가 동방으로 되돌아 온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요컨대 동이의 문화를 기자의 교화의 산물로 치부하는 것은 본말을 도치시킨 일종의 왜곡이라 할 수 있다.
≪한서?지리지≫는 앞서 지적하였듯이 기자 설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관점도 아울러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이는 천성이 유순하여 세 변방의 외부와 다르기 때문에, 공자가 도가 행하여지지 않음을 슬퍼하여, 바다에 탈것을 마련하여 구이에 살고자 하였던 것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도다. (밑줄은 필자)

반고(班固, 32~92)는 ‘그러나’를 사용하여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음을 독자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위 기록에 의하면, 동이족의 문화가 다른 변방 민족과 다른 이유는 바로 그들 자신의 ‘천성’, 다시 말해 고유한 특성 때문인 것이다. 공자가 선망한 것도 물론 이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반고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탁월한 언어학자인 허신(許愼, ?58~147)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강(羌)은 서융(西戎)으로 양의 종속(羊種)이다. 양(羊)과 아(?)를 따르는데, 양(羊)은 또한 소리도 나타낸다. 남방의 만민(蠻?)은 충(?)을 따르고, 북방의 적(狄)은 견(犬)을 따르고, 동방 맥(?)은 치(?)를 따르며 서방 강(羌)은 양(羊)을 따르니, 이들은 여섯(별다른의 잘못: 단옥재) 종속이다. 서남의 북인(?人)과 초요(焦僥)는 인(人)을 따르는데, 모두 곤(坤)의 지역에 처해 사뭇 순리적인 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동이만이 대(大)를 따른데, 대(大)는 진짜 인(人)이다. 동이의 습속이 인자하고, 인자는 장수하므로, 군자와 불사의 나라가 있는 것이다. 공자가 도가 행하여지지 않으므로 구이에 가고자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가고 싶어 하였으니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허신에 따르면, 동이족은 다른 변방 민족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른 민족들의 명칭에는 동물 부수가 달려 있는 반면, 동이족만이 사람, 그 중에서도 두 팔과 두 다리를 벌리고 대지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큰 사람인 ‘대(大)’를 따르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습속이 인자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에 ‘불사’의 나라가 있다고 한 것은 그러한 습속이 ‘신화’ 시기부터 비롯된 것임을 시사해준다.
이처럼 ≪한서?지리지≫와 ≪설문해자≫는 공자가 “구이에 가서 살고자 함”은 동이의 천성 또는 습속 자체가 유순 또는 인자하기 때문이라 분명히 적고 있다. 그렇다면 기자교화 설은 당연히 설득력을 잃게 된다. 따라서 문제의 문구는 “군자인 동이족이 그곳에 지금 살고 있으니” 로 번역되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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