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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5110430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13-08-02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7
1. 이별도 습관이다 // 9
2. 쓰임새 많은 병풍 // 33
3. 소중한 친구? // 61
4. 여자는 배, 남자는 항구 // 105
5. 습관 // 136
6. 바로 이 여자 // 173
7. 탐욕 // 193
8. 공허한 눈빛 // 215
9. 혼란 // 253
10. 떠나는 배 // 287
11. 또 다른 시작 // 323
에필로그 // 363
저자소개
책속에서
“넌 마리의 버릇을 더럽게 키웠어.”
그리고 시연은 마리가 싫었다. 마리는 자신의 십년지기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녀석만 아니면 단 한시도 보고 싶지 않은 위인이었다. 심지어 시연에게는 평생 보지 못한다고 해도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여자였다.
어쨌든 지수야 말로 진정한 자신의 십년지기였다. 마리는 그 10년 동안 그의 연인이었고. 그 시간동안 세 사람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는 말이다.
문제는 지수나 마리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는데, 애초부터 시연이 그에게 품은 감정이 우정과 전혀 거리가 멀다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우정이라면 기꺼이 그 우정만 줄 작정이었다. 시연은 그에게 더 바란 적도 없고 덜 준적도 없었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사실 시연은 지금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이 우정을 계속 이어가야 할지, 아니면 이쪽에서 끊어내야 하는 건지. 인내해야 하는 시간들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지금처럼.
상념을 털고 시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눈앞의 문제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 옳았다.
“걘, 자기가 공주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고.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마리를 공주라고 부른 건 너야. 난 그런 적 없어.”
지수가 단칼에 잘라 말했다. 이럴 때는 그도 꽤나 단호해 보인다. 하지만 꼭 시연 앞에서만 단호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리고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언제인가부터 시연은 좀 시니컬한 기분으로 마리를 공주라고 불렀다. 그 발로가 일종의 질시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다행인 것은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으니 그녀가 어떤 심정으로 마리를 그렇게 부르고 있는지는 지수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시연은 그가 진정으로 모르길 바랐다.
“그랬지.”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내가 마리를 프린세스로 만들진 않았다는 거야.”
“물론 공식적으로 네가 마리를 프린세스로 임명하진 않았지.”
인정하긴 했지만 시연은 좀 투덜거렸다. 공주라고 부르는 말이 중한지 공주를 극진히 대접하는 행동이 중한지 어디 한번 따져보자고 쏘아붙이고 싶지만 상대방의 상태를 보아하니 역시 오늘은 무리였다. 그만한 눈치는 시연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넌 온 몸으로 마리가 언제나 자신이 공주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잖아.”
시연은 타이르듯 그에게 말했다.
“두 사람이 결혼하면 그땐 마리가 왕비가 되는 건 아주 확실하지.”
시연은 빈 그의 잔을 다시 채워주고는 한숨을 애써 삭인 뒤 그를 보았다.
“그렇지만 넌 나에게 마리의 왕이 아니라 마리의 마당쇠가 된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왕비와 마당쇠라. 큭! 아주 적절하다. 음식에만 퓨젼 바람이 부는 건 아니네.”
시연은 킬킬 웃으며 빈정거렸다.
“난 지금 농담할 기분이 아니라고.”
평소라면 그녀의 유머에 함께 킬킬거릴 그였지만 날이 날이니 만큼 인상을 쓰는 것은 상관이 없었다. 저 암울한 눈빛만 아니라면 말이다. 시연은 그 눈빛에서 고통을 지워주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다. 그건 언제나 마리의 몫이었다. 그녀가 마음을 풀고 지수에게 두 팔을 벌려 그를 안아주며 그가 느끼고 있는 지금 이 고통을 잠재워 줄 때까지, 단지 그 고통의 과정을 차질 없이 잘 진행되도록 돕는 것이야 말로 그녀의 몫이었던 것이다.
이번엔 또 무슨 문제로 마리가 이 녀석에게 이별을 고한 거지?
그제야 시연은 처음부터 당연히 떠올렸어야할 의문을 떠올렸다. 그렇다고 딱히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별의 이유를 알아야 두 사람을 이어 붙여주든 할 것이 아닌가. 징글징글하지만 두 사람의 문제를 파악해 풀어주는 것 역시 그녀의 몫이었다.
다시 한 번 지수에게 이번 이별의 원인을 묻고자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욱하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두 사람의 이별 원인을 알고 싶지 않아졌던 것이다. 마리가 그에게 이별을 고하게 된 이유 따위는 한강에다 던져버렸으면 좋겠다. 더 이상 두 사람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단연코. 아주 오랫동안 되풀이되는 이런 일들이 피곤해졌다.
시연은 오늘만큼은 지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즉, 그녀 마음대로 해보기로 했다. 당장 한강까지 달려가는 것은 아니어도 지금 그녀가 마시는 생수와 함께 알약처럼 미라가 선언한 이별의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꿀꺽 삼켜버리기로 한 것이다.
솔직히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서서히 술에 먹히는 상황으로 치닫는 이 남자도, 마리도,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그게 문제야.”
좀 신랄한 어조로 그에게 단언했다.
“뭐?”
“공주는 공주인데, 네가 선택한 것이 재수 없게 백설공주라는 것이 문제란 말이지.”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너 그거 알아?”
“내가 뭘 알고 있어야 하는 건데?”
“백설공주가 일곱 난장이를 어장관리 한 거?”
“그래서 넌 지금 내가 백설공주가 사랑한 일곱 난장이 중 하나라는 거야?”
“빙고! 정확히 그래.”
시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난장이라는 말인데, 넌 이렇게 키가 큰 난장이를 본 적이 있다는 말이야?”
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고는 안 했어. 그리고 너 같이 큰 난장이를 본 적은 없어.”
그랬다. 그는 159센티미터인 시연보다 정확히 28센티가 컸다. 그의 어깨는 넓었고, 가슴은 단단했다. 그의 허리에는 군살이 하나도 없었다. 시연은 그의 몸매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몸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영장에서 그의 몸매를 봐서이기도 했고, 오늘 밤 그녀가 해야만 하는 일이 그의 이별횟수에 비례에 엄청난 수로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키와 덩치 차이를 인식하고서야 시연은 지금 당장이라도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을 했다.
본능적이든 생리적이든 허기지면 곤란했다. 여러모로.
“그럼 그렇게 말하는 의도가 뭐야?”
“문제는 지금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너무 심각하다는 거라고.”
“네 발등에 불이 떨어져?”
“너 말이야, 너.”
“나?”
“좀 천천히 마실 수 없어?”
시연은 화제를 바꿨다. 그와 언쟁을 하는 건 옳지 못한 방법이었다. 시연은 그가 손도 대지 않은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힘을 비축해야만 했다. 지금 그가 마시는 속도로 보아 끝이 멀지 않았다.
“마리가 옆길로 샌 것이 어디 이번이 한두 번이야?”
“아예 날 죽여라.”
급하게 쓸어 넣듯 과일을 삼키는 그녀를 빤히 보며 그가 말했다. 그의 눈빛이 짙었다. 거기다 그녀를 빤히 보고 있기까지 했다. 순간적으로 시연은 사례가 들 뻔 했다. 채 씹지 못한 큰 사과 덩이를 꿀꺽 힘겹게 삼키고는 믿기지 않는 기분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가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 시간이 멈춰버린 듯 했다.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훑어보는 그의 눈빛에 기묘한 열기가 피어나더니 온몸으로 번져갔다. 그것은 또 다른 허기였다.
“그걸 상기 시켜 그렇게까지 사람 비참하게 만들 필요 없다고.”
마침내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린 그가 말했다. 아무렴 그럴 테지. 순간적으로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피부에 닿는 열기를 오인했던 자신이 한심했다.
“그럴 때마다 네가 이렇게 안달을 하니 걔가 기고만장해지는 거라고.”
시연은 실망을 애써 감추었다. 물론 술에 먹히고 있는 그가 그것을 눈치 챘을 리는 없다.
“그냥 하고 싶은 말만 해.”
“이번에도 다시 돌아 올 것이 뻔 하잖아.”
“요점만 간단히.”
이젠 그 어떤 말도 듣기조차 거추장스럽다는 듯 지수가 손을 휘휘 저었다.
“요는 마리를 더 이상 공주 대접 하지 말란 말이지. 네가 백설공주가 손잡고 들어가는 왕자가 확실히 되는 방법이 생길 때까지. 넌 난장이 노릇 하는 것도 질리지 않아? 나라면 벌써부터 물렸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