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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일반
· ISBN : 9791155801246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19-08-10
책 소개
목차
출간에 부쳐
여는 글
해제 척불 정책에 대한 논리적 반박, <간폐석교소> _ 벽산 원행
1. 백곡의 생애와 <간폐석교소>를 저술한 동기
2. <간폐석교소>의 내용과 의의
3. 불교 무용론과 유해론에 대한 반박
제1부 시대정신의 불꽃, 백곡 처능의 생애
1. 유교의 한계와 양란 사이의 탄생 및 출가
2. 백곡의 출가 계보와 조선 중기의 불교계
3. 선조의 부마 신익성에게 유학을 배우다
4. 벽암 각성을 스승으로 모시다
5. 백곡의 성지 순례와 서산 대사에 대한 추모
6. 전란의 극복 과정과 조선 정부의 태도
7. 유교의 영향과 불교의식집의 재편 필연성
8. 백곡의 문명文名과 인조를 위한 천도문 작성
9. 봉은사의 삼세불상 불사 참여와 대둔산 안심사의 주석
10. 예법의 강조 속에 경직화되는 주자학
11. 예송 논쟁과 불교의 말살을 시도하는 정국
12. 국가의 부름과 수행자로서의 삶
13. 백곡의 마지막을 불태운 금산사 대법회
제2부 불교 폐지의 부당함을 알리는 상소문 : <간폐석교소> 쉽게 읽기
1. 이치에 맞는 말이라면 가벼이 여기지 마라
2. 크게 이루려는 이는 작은 것조차 버리지 않는다
3. 현종은 최고의 성군이며, 이는 백곡의 영광이다
4. 군주는 간언을 통해 올바름을 이룬다
5. 백곡이 진언한 이유와 당시의 여섯 가지 불교 비판
6. 부처님에 대한 중국 고대 기록으로 당위성을 강조함
7. 불교는 진시황 때 시작되어 당·송 시대에 꽃이 피다
8. 당시 유행하던 여섯 가지 불교 비판에 대한 백곡의 변증
9. 불교를 존숭한 황제의 뛰어난 치적과 엇갈린 평가
10. 불교를 숭상한 대표적인 명신과 고결한 선비들
11. 불교를 배척한 임금들의 비극적인 최후
12. 불교를 배척하고 비판한 신하들은 혼란기의 소수일 뿐이다
13. 책에 적힌 기록에는 필연적으로 오류가 존재한다
14. 불교를 배척한 유학자들도 전폐를 말하지는 않았다
15. 유교 역사서의 맹점과 불교 기록의 의도적인 누락
16. 불교가 전래하기 이전의 혼란한 국가들과 군왕
17. 우리나라의 불교 전래와 불교가 국가를 이롭게 한 역사
18. 모든 세상에는 불교가 있으니, 함부로 없애려고 해서는 안 된다
19. 도선 국사는 사찰을 건립해 국가가 흥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 고승의 존재 유무는 국가의 흥망과 직결되는 가치이다
21. 동아시아 비구니의 출가 역사와 내원당과 외원당의 구분
22. 선대의 유업을 계승해 사찰 철폐의 오류를 시정하라
23. 두 비구니 사원을 없애고 비구니를 쫓아낸 것은 선왕을 계승한 것일 수 없다
24. 사찰에 군주의 위패를 모신 연원과 위패를 없애고 제사를 그치면 안 되는 이유
25. 선왕의 위폐를 묻고 제사를 폐지하자 가뭄이 계속되는 재앙이 발생했다
26. 자수원과 인수원을 복원하고 당장 불교 탄압을 중단하라
부록 <간폐석교소> 원문
백곡 처능 연표
백곡 처능 관련 번역서와 연구 목록
책속에서
조선 중기 가혹한 척불의 시대 상황에서 백곡은 목숨을 내놓고 냉철한 논리로 척불의 시정을 촉구한다. 또한 〈간폐석교소〉는 조선조 500년간에 걸친 배불 정책하의 불교사에서 단 한 편의 반박 상소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높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그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논리정연하고 간결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국가의 가혹한 배불 정책에 대한 불교 측의 공식적 항의인 동시에 백곡의 분명한 호법 의지를 보여주는 〈간폐석교소〉는, 한국 불교사뿐 아니라 정치사에서도 괄목할 만한 기념비적인 찬술이다. - 해제 중에서
왜란을 거치면서 유교가 백성의 신뢰를 잃었다면, 불교는 오히려 민중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반등한다. 국가의 전폭적 지원하에 고려 때까지 호황을 누리던 불교는 조선이 들어서면서 전대미문의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국가의 지원이 끊기고 국가와 유생들이 탄압하는 상황에서 불교가 유지될 수 있는 의지처는 민중뿐이었다. 이렇게 명맥을 유지하던 불교는 왜란이 발발하자 승군을 조직하며 국가와 민중을 위해 싸웠다. 양반들이 비겁하게 도망친 상황에서 승려들이 민중과 더불어 국난 극복에 앞장선 것이다. 이로 인해 유교에 실망한 백성들은 불교를 재인식하며 돌아서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