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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91156341079
· 쪽수 : 204쪽
· 출판일 : 2015-11-2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살아온 날이 날마다 자카란다 빛깔의 잔칫날
작품해설 시와 소설이 함께 들어 있는 수필(나태주) 94
8월의 연(鳶) ·13
가는 세월 ·16
가을 국화 ·21
거라지 세일 ·24
개똥벌레의 여행 ·27
아! 가을 냄새 ·31
고마운 소 ·35
고맙다 봄아 ·40
고향에서 온 부채 ·43
그림 같은 시, 시 같은 그림 ·47
도라지꽃 ·54
매미는 시인이었다 ·58
믿고 사는 세상 ·63
삶의 향기 ·68
비둘기 발가락 ·73
손, 손, 손 ·78
수호천사 ·82
쑥에 담긴 고향 맛 ·87
아기장님 제인 ·91
황홀한 작은 공간 ·94
인사동 장날 ·98
작은 우주 ·102
빈대에게 물어봐 ·106
재미있는 전쟁 ·110
첫사랑 사색 ·113
콩나물 ·117
탯줄 ·121
호랑이 이야기 ·125
마음의 부자 ·130
네 잎 클로버 ·136
미안해 로미오 ·140
스승의 날에 ·144
이빨 여행 ·148
내가 사랑하는 작은 부스러기들 ·153
선물 ·158
무궁화, LA에서 만나다 ·161
울엄마 은가락지 ·164
제비 오는 날 ·168
등잔 밑 ·173
아버지의 눈 ·177
출산 장려, 출산 억제 ·185
향기등대 ·189
저자소개
책속에서
미국에서 보는 모든 것들은 내가 살아온 한국 것들과는 모양새가 조금씩은 다르다. 특히 조류가 그래서 약간은 낯설다. 그러나 비둘기만큼은 낯설지가 않다. 비둘기 본산지는 원래 서양이라고 하지만 한국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어쩔 땐 나처럼 이민자라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까마득한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아버지가 동네서 비둘기 한 쌍을 얻어 오셨다. 바로 사람을 시켜 지붕 위에다 큼직한 집을 지어 비둘기들의 살림을 차려주었다. 한데 며칠 지나자 큰일이 났다. 비둘기가 알을 품었는데 어른 팔뚝보다 더 두꺼운 구렁이가 기둥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비둘기의 신혼집을 더듬어 알을 먹어버렸다. 그런 난리가 있었는데도 비둘기들은 어찌나 번식을 잘하던지 식구가 금방 늘어 툇마루며 마당이 깨끗할 날이 없었다. 살림을 돌보던 바지런한 끈님이 성이 빗자루를 들고 비둘기들을 쫓는다.
“훠이! 훠이! 이 똥 좀 봐. 참말 드러워서 못 살겄네.”
“내비 둬라. 저 머리통 이쁜 것 좀 봐라. 목을 움직일 때마다 양색이 나는 것이 꼭 비단 목도리를 두른 것 같구나. 비둘기는 전쟁 때 편지도 잘 전해주는 집배원이란다.”
대청마루에서 저고리 동정을 달고 계시던 엄마가 대꾸하신다.
“근디 어찌나 부부금실이 좋은지라우. 작은각시는 절대로 안 본답디다. ”
“그래서 금실 좋은 부부를 보고 비둘기 한 쌍이라고 하지 않디?”
나도 한마디 끼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 저 빠알간 발가락 좀 봐, 발 시리지 안으까?”
나는 이민 초기에 LA 다운타운 한쪽 귀퉁이에서 노점상을 한 적이 있다. 우연히 고향 친구를 만나 등을 떠밀리다시피 해서 얼떨결에 시작한 생활 수단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장사를 해 본 경험도 없을 뿐 아니라,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처지라 지금 생각하면 이만저만 통 큰 짓이 아니었다. 조그만 좌판에다 핸드백을 놓고 파는 장사였다. 한국사람 도매상에서 사다가 가방 속에 헌 종이를 넣고 모양을 잡아 좌판 위에 늘어놓는다. 그리고 손님과 도둑을 가리는 눈도 없이 종일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황폐한 LA 다운타운은 비둘기들이 새벽을 연다. 온종일 사람들 속에서 푸드덕거리며 종종걸음으로 부지런히 먹을 것을 잘도 찾아 먹는다. 어느새 비둘기들이 보이지 않으면 좌판 보따리를 쌀 시간이다. 왁자지껄하던 사람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장사도, 손님도 비둘기도 다시 오지 않고,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노숙자들만 움직이니 다운타운은 어둠과 함께 유령의 도시로 변하고 만다.
나는 장사를 할 줄도 모르고, 또 장사도 시원찮고 해서 내 앞에서 종종거리는 비둘기들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곳의 비둘기들은 그 연하고 빨간 발가락이 모두 뭉그러지고, 떨어져 나가고 성한 놈이 거의 없다. 어떤 녀석은 발가락이 하나도 없어 마치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것 같다. 나는 빨갛고 연한 녀석들의 발가락을 보면서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싶어 가슴이 저려오면서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다운타운에서 바느질 공장을 오래 했다는 후배가 들렀기에 물어봤다.
- ‘비둘기 발가락’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