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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닻 리더십

이순신 닻 리더십

국정호 (지은이)
해드림출판사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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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닻 리더십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이순신 닻 리더십 
· 분류 : 국내도서 > 자기계발 > 리더십 > 리더십
· ISBN : 9791156346586
· 쪽수 : 472쪽
· 출판일 : 2025-11-11

책 소개

해군 항해과 장교로 30년 넘게 복무한 저자는 Seaman’s Eye로 충무공 이순신의 리더십을 다시 읽어내며, 닻이 먼저 내려 배를 고정하듯 위기 속 가장 먼저 뛰어드는 리더를 ‘닻 리더십’으로 정의한다.

목차

프롤로그 - 심연에 잠든 닻을 끌어올리자 10

감수의 글 박재훈(충무무공훈장 수상자, 초대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장) 20
환영사 김진형(전 해군 소장, 피지 등 남태평양 6개국 특명전권대사) 24
격려사 1 손 욱(세종국가경영연구원 이사장, 전 농심 회장, 전 삼성종합기술원장) 28
격려사 2 최병순(전 국방대 리더십 전공교수, 전 동국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31
추천사 1 박현모(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34
추천사 2 김오현(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 전 국방대 및 성신여대 교수) 36
추천사 3 류효상(전 해군 소장, 전 해군 2함대사령관, 국방부 첨단전력기획관) 40

제1부 임진왜란
[칼럼 01] 이순신이 지킨 ‘당초의 약속’ 46
[칼럼 02]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경상도 출전 준비 53
[칼럼 03] 이순신의 첫 싸움 ‘옥포해전’ 승리 비결 65
[칼럼 04] 제2차 출전에서 적의 흉탄에 맞은 이순신 76
[칼럼 05] 한산대첩의 비밀 (1) 88
[칼럼 06] 한산대첩의 비밀 (2) 96
[칼럼 07] 적들이 기겁한 안골포해전 104
[칼럼 08] 심리전의 승리, 부산포해전 113
[칼럼 09] 계사년 이순신의 선택, 한산도 이진 123
[칼럼 10] <난중일기>로 본 이순신의 진중생활 (1) 132
[칼럼 11] <난중일기>로 본 이순신의 진중생활 (2) 142
[칼럼 12] 류성룡과 이원익의 무한신뢰 149

⎈ 이순신 리더십 에피소드(1) : 왜란 이전의 이순신 157
⎈ 별지 1. <전수기의>를 통해 본 이순신의 전쟁술 183
⎈ 별지 2. 참고문헌 215

제2부 정유재란
[칼럼 13] 정유년 이순신의 파직과 투옥, 백의종군 219
[칼럼 14] 칠천량해전의 복몰과 이순신의 수습 227
[칼럼 15] 이순신이 전선 12척을 말한 진짜 이유 235
[칼럼 16] 절망의 순간, 조선 수군을 일으켜 세운 이순신의 말 242
[칼럼 17] 전의를 상실한 배설의 탈영 249
[칼럼 18] 명량해전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의 몰입 258
[칼럼 19] 명량해전, 그 숨 가쁜 순간들 (1) 265
[칼럼 20] 명량해전, 그 숨 가쁜 순간들 (2) 277
[칼럼 21] 사랑하는 아들 면(葂)의 죽음 289
[칼럼 22] 명량해전 이후 역경을 뚫고 수군 재건 295
[칼럼 23] ‘독송사’를 일기에 적은 이순신의 심경 303
[칼럼 24] 무술년 새해 첫 업무, 판옥선 진수식 309
[칼럼 25] 무안현감을 곤장 친 이순신 317
[칼럼 26] 8개월 이상 일기를 쓰지 않은 이순신 325
[칼럼 27] 진린이 본 동방의 대장별 335
[칼럼 28] 결사전, 노량해전과 이순신의 죽음 340
[칼럼 29] 이순신의 후계자 352
[칼럼 30] 이순신 닻 리더십 357

⎈ 이순신 리더십 에피소드(2) : 이순신의 예하 장수 391
⎈ 별지 3. 이순신의 해전에 대한 현대적 해석 404

에필로그 - “당신의 바다에 가장 먼저 닻을 던져라” 418

서평 423
참고자료 - 소서(素書) 434
참고문헌 457

미주 462

저자소개

국정호 (지은이)    정보 더보기
· 충남 논산(강경) 출생, 인천 동인천고 졸업(1988) · 해군사관학교 제46기 졸업 및 임관(1992) · 1함대 강원함(DDH 922) 갑판사관(1994~95) · 3함대 욕지도 고속정(PKM 267) 정장(1995~96) · 작전사령부 관리참모처 계획담당(1996~98) · 5전단 계봉함(LST 675) 부함장(1998~99) · 국방대학교 리더십 석사 1기(2000~01) · 1함대 울릉도 정작참모(2002) · 진기사 근무지원단 정작참모(2003) · 해군대학 정규과정 학생장교(2004) · 1함대 1전단 인사참모(2005) ·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 리더십 교육담당관(2006) · 1함대 153편대장(2007) · 1함대 11구축함전대 선임참모(2008~09) · 해군 전역(2010), 예. 해군 중령 ·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본부 RAM분석팀 전문연구원 (2010~13) * 해군 무기체계 개발사업 RAM 분석 담당 · 한화에어로스페이스(주) PGM 연구소 책임연구원 (2014~25) * 미래 무기체계 연구개발 통합체계지원(IPS) 담당 · 세종국가경영연구원 교육팀장(2025~ ) · 저서 : 『세종과 이순신, K 리더십』 (2022. 4. 28. 충무공탄신일) · 소명 : “우리 역사의 위대한 리더십 유산을 후세에 알차게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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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순신 유사를 쓰는 좌의정 이항복의 붓끝이 떨린다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
은 임진왜란이 끝난 2년 후선조 33년(1600년)에 삼남 지방을 돌며 이순신의 행적을 모아 ‘고 통제사 이공 유사’를 작성하여 선조에게 올렸다. 이 유사에는 당시 임금 선조에게도 치명적인 실책일 수밖에 없는 이순신의 파직과 백의종군에 대한 부분도 조심스럽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의 파직(罷職)은 조정의 결정이었으며, 다만 선조가 이순 신을 용서하여 백의종군(白衣從軍)케 하고, 이순신이 죄를 반성하고 스스로 진력(盡力)하게 했다고 이항복은 돌려 말했다. 리더인 임금의 잘못이 아니라 팔로워인 우리들(조정)의 잘못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던 현직 좌의정 이항복의 깊은 고민이 숨겨져 있다.

정유년(1597년) 정월에는 적추 가등청정(加籐淸正, 가토 기요마사)이 재차 바다를 건너왔는데, 조정에서 공(이순신)이 그를 맞아 공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게 하고, 원균을 대신 상장(上將, 여기서는 삼도수군통제사)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공이 서울로 압송되는 길에 남녀노유(男女老幼)가 모두 길을 가로막고 부르짖어 통곡하였다.

공이 조사를 받음에 미쳐서는 상(선조)이 공을 용서하고 백의(白 衣)로 강등시켜 도원수(都元帥, 권율)의 진중(陣中)으로 보내서 공이 죄를 반성하고 스스로 진력하도록 하였다.


이순신의 투옥과 정탁의 신구차

정유년(1597년) 2월 6일, 선조는 왜 이순신을 투옥하라고 명령하였는가?
단지 부산 왜영 방화사건에 대한 그릇된 보고와 이순신이 요시라(要時羅)의 간계(奸計)를 믿지 않고,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인가? 또 정보가 불충분한 조정의 지시를 어기게 된 사건이 과연 전쟁 중 가장 믿음직스러운 무장(武將)을 교체할 정도로 큰 죄였던가? 아니면 이순신을 모함((謀陷)하고 중상(中傷)하던 자들의 이간질에 선조가 솔깃하여 넘어간 것인가? 역사를 되돌리고 싶은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어찌 옛말은 틀리지 않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힘써 애쓰고 따라도 감히 노고를 말하지 못하노라. 죄도 없고 허물도 없건만 참소하는 입은 떠들썩하구나” 67) 이런 때가 되면 위로는 참으로 추하고 그 아래 백성들은 참으로 슬픈 일이 된다. 이순신은 홀로 바른 도리를 지키면서 조정의 굽어진 판단에도 굴하지 않고 제 위치에서 힘써 왕사(王事, 나랏일)를 제 일처럼 고수하며 적들의 흉계를 대적하였는데, 도리어 조정에서는 증오와 모독과 참소가 생겨났다니, 한양으로 끌려가는 이순신의 한탄이 흘러나온다.

이순신은 정유년(1597년) 2월 26일에 한산도에서 압송되어 3월 4일 한양의 옥에 갇혔다. 그리고 이어서 위관(委官)에 의한 한 차례의 고문(拷問)을 당했다. 당시 이순신의 죄상은 선조 임금이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할 만큼 무거운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이순신의 목숨은 경각(頃刻, 극히 짧은 시간)에 달려있었다. 특히 윤근수와 김응남을 중심으로 한 류성룡 반대파들은 이순신 죽이기에 열심이었고, 현풍현감 박성은 이순신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상소(上疏)를 올리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이순신의 구명운동(救命運動)을 벌인 인물들도 많았다. 체찰사 이원익을 비롯한 많은 동인 계열의 조정 신료들과 정경달 등 한때 이순신의 막하 인물들까지 이순신의 구명(救命)에 발 벗고 나섰다. 그러나 정작 이순신의 천거자이자 후견인인 류성룡은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나설 경우, 동인 계열의 자신 추종 세력들과 이순신이 함께 큰 해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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