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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5047
· 쪽수 : 448쪽
· 출판일 : 2021-06-29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황혼의 시작
1장. 드디어 만났다, 지나가는 사람 2
2장. 세 번째는 없습니다
3장. 그림의 가격은 0원
4장. 사람의 마음은 상대적인 거예요
5장. 뚝배기 같은 사랑을 할 거야
6장. 설상가상
7장. 사랑의 도시락
8장. 단풍놀이
9장. 공포 영화보다 더 무서운
10장. 황혼
11장. 지윤의 소울메이트
12장. 라이언의 제자
13장. 여명
14장. 여울의 그림 실력
에필로그. 황혼에서 여명까지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
여울과 어깨를 부딪친 여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여울을 사납게 노려보는 그녀의 표정에서 사과를 받아 내겠다는 의사가 명백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멈춰 선 여울의 시선은 허공 어딘가를 향한 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여울과 눈을 마주하려던 여자의 얼굴에 당황이 서렸다. 그녀의 표정이 도저히 정상인의 표정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여울의 발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울의 모습은 마치 태엽을 감아 앞으로 걷는 것만이 허용된 인형 같았다.
“뭐,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어우, 소름 끼쳐.”
여자는 앞만 보며 걷는 여울의 뒤통수에 대고 뭐라 몇 마디 더 중얼거린 뒤, 서둘러 자신이 가던 길을 갔다. 저런 사람을 건드렸다가 괜히 재수 없는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계속해서 앞만 보며 걸어가던 여울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차올랐다. 더 이상 차오를 수 없을 정도까지 차올랐던 눈물은 곧 중력에 의해 아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표정 없는 얼굴에 투명한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방울, 두 방울…….
시간을 두고 천천히 떨어지던 눈물이 시간이 지나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흘러나왔다. 이윽고 눈물은 그녀의 뺨을 온통 적셨고, 검은 점퍼를 향해 굴러떨어졌다.
걸으면서 우는 모습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긋거렸지만, 그들은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다는 듯 여울을 피해서 걸을 뿐이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인형처럼 표정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던 여울이 자리에 멈춰 섰다. 병원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여울은 온몸 가득 품고 있던 긴장을 풀었다. 간신히 몸을 지탱해 주던 긴장이 풀리자 그녀는 허물어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언니…….”
내내 부르고 또 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존재의 이름이 입술 밖으로 흘러나오자, 여울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언니,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중얼거렸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늘을 올려다본 여울의 눈에 태양이 보였다. 우주의 심장인 태양의 빛이 너무 강렬했다.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한 여울의 눈이 저절로 반쯤 감겼다. 본능적으로 반쯤 감긴 시야 사이로 햇살이 아프게 파고들어 왔다.
반쯤 감아도 여전히 시야를 가득 메운 채 번쩍거리는 태양 빛은 그녀를 한순간에 지옥으로 떨어뜨렸던 그것과 너무나 닮았다. 여울을 한입에 집어삼키려고 달려들었던 그것은 그녀 대신 언니를 삼켰다.
여울은 천천히 손을 들어 하늘을 향했다. 언니를 빼앗아 갔던 그것과 꼭 닮은 저 안에 언니가 있을 것 같았다.
49일 전, 그녀는 같은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 피를 나눈 형제자매보다 더 친자매같이 지내 온 지윤과 만났다. 그녀와는 3년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여울보다 일곱 살 많은 재준과 세 살 많은 지윤, 그리고 두 살 많은 유성은 보육원 안의 많은 아이들 속에서도 유난히 가깝게 지냈다. 그들은 서로를 ‘스스로 선택한 가족’이라고 불렀다. 전생에 한 가족이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들의 관계는 유별났다.
누군가가 괴롭힘을 당하면 다 같이 똘똘 뭉쳐 달려가서 혼쭐을 내 주기도 하고, 일일이 하나하나의 생일을 챙기기 힘든 보육원에서 그들은 서로의 생일이 되면 간식으로 나온 초코파이를 한데 모아 그들만의 축하 케이크를 만들어 먹었다. 맛있는 것이 생기면 욕심부리지 않고 다 함께 나눠 먹었고, 놀 때도 공부할 때도 항상 넷이 함께했다.
가족보다 더 가족같이 끈끈한 그들의 관계에서 같은 여자였던 지윤과 여울의 관계는 조금 더 특별했다. 여울에게 있어서 지윤은 언니를 넘어서 엄마 같은 존재였다. 지윤은 함께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항상 여울에게 먼저 양보했다. 그녀는 여울이 웃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런 지윤의 보살핌을 받으며 여울은 부족함 속의 커다란 행복을 느꼈다. 덕분에 여울은 누구보다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울의 행복은 지윤과 재준이 먼저 성인이 되어 보육원을 나오게 되면서 잠시 멈췄다. 그들은 언젠가 또다시 함께 살자고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했다. 하지만 여울이 보육원에서 나올 때쯤 지윤은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그 뒤 꼬박 3년 동안 여울은 지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49일 전, 지윤은 돌아왔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그녀가 많이 변했을까 봐 걱정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지윤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여울이 좋아하는 따뜻한 미소도 여전했다.
그들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후식으로 여울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체인점의 아이스크림을 사서 어린아이처럼 핥아 먹으며 사이좋게 집까지 걸어갔다. 그때까지는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즐겁고 행복할 줄만 알았다.
그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깔깔대고 웃으며 집으로 가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지윤이 휴대폰에 온 문자를 확인하고 있을 때, 신호가 바뀌었다. 여울은 지윤이 뒤처지는 것도 모르고 먼저 횡단보도에 발을 들였다.
“여울아!”
문자를 확인한 후, 여울보다 몇 걸음 뒤처져서 따라오던 지윤이 갑자기 큰 소리로 여울을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