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5120863
· 쪽수 : 120쪽
· 출판일 : 2023-12-31
목차
시인의 말 5
1부
맹방 순비기 · 13
맹방 해국 · 14
맹방 해당화 · 15
소한계곡 · 16
부남 해당화 · 17
맹방 바다 · 18
곰치국 끓이는 아침 · 20
곰치국 1 · 21
곰치국 2 · 22
부남 모란 · 23
번개시장 1 · 24
번개시장 2 · 25
번개시장 3 · 26
번개시장 4 · 27
봄 바다 · 28
2부
다래끼 · 31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 · 32
부점과 반음 사이 · 33
폐허를 짓는다 · 34
환절기 · 35
입춘 무렵 · 36
바람아! · 38
절정 · 40
노안 · 41
쐐기를 박는다 · 42
사랑 · 43
나의 시론 · 44
친퀘테레(Cinque Terre) · 45
닭의 부화 · 46
춘설 · 47
3부
어떤 약속 · 51
아! 사월 · 52
묵호 논골담에서 · 54
세월호 8주기 · 56
무엇이 바뀌었을까? · 58
검사가 다스리는 세상 · 60
사슬을 끊고 연대로 · 62
파도는 혼자서 파고를 만들지 않는다 · 64
강 건너 평화 구경 · 67
국회 앞에서 발길을 돌리다 · 68
연대 · 70
떡 신자 · 72
오월은 내게 · 74
뜨거운 잠수 노동자 · 76
이대론 살 수 없다 · 78
4부
침을 맞는다 · 81
어떤 기억 · 82
집회 · 83
자유 · 84
멕시코 공항에서 · 86
버마 민중투쟁을 지지하며 · 87
가자미 · 88
촛불이 되어 · 89
게이트를 열어라! · 90
김용희 · 93
씨앗 · 94
고 김용균을 추모하며 · 95
어느 강연장에서 · 96
원래가 사람을 죽였다 · 98
꽁치가 위험하다 · 102
발문 ‘젊은 날 위태롭고 뜨거웠던 사랑’에 대하여 / 송경동·104
저자소개
책속에서
곰치국 끓이는 아침
-
부남마을 예닐곱 마지기 다랑논
달포 만에 모내기 끝낸 김남용 씨
이른 아침 번개시장엘 다녀와서
아내에게 검은 봉지 내미는데
아내는 곰치를 또 사왔다며
우물가에 내동댕이쳤다
출렁거리며 쏟아진 검은 비닐봉지 속
검은 물곰 한 마리
깨알같은 눈 삼척 사내 같고
물크덩한 살 삼척 여인 같다
-
양은 냄비 곰치국 끓어오르는데
흐물한 옛 사랑이 비릿하다
김남용 씨 국그릇 코를 박고
뜨신 국물 들이마시고는
삽을 둘러매고 잰걸음 나서는데
발걸음 오늘은 가볍다
곰치국 끓이는 부남의 아침이 희붐하다
--
묵호 논담골에서
--
인천에서 활동하는 동지들과 오랜만에
봄바람 아스스한 묵호 논골담에서 만나며
가족의 안부를 묻다가 문득,
대중운동론을 토론했다
후배는 선배는 좀 더 대중운동가처럼 활동하라고
지금 선배의 모습은 아니라며
취중에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지나온 내 삶은
저기 바다의 풍랑같이 위태로웠고
한때 자연을 찾아 별들을 헤아렸고
또 어느 순간엔 음악에 취해 길을 잃었고
부평초처럼 떠돌다 고흐의 별빛에 잠이 들었다
때론 아까운 인생을 헌 집을 고치는 데 소비했고
어느 날엔 생선의 눈동자를 쫓았으며
잘린 생선의 머리에 혼을 빼앗겼으며
그러다가 무료한 날이면 바닷가에 낚싯대를 드리우며
좌면우고 우왕좌왕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고
그런 날이면 벗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일 생각에 들떴고
두 번의 파국을 맞이한 삶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 여자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매일 연민의 밤을 지새우며 흔들리고 있는데
나에게 대중적 운동가의 삶은 가당치 않았다
노동조합 선거에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내걸었다고 낙선했고
30년 회사 생활에 포상 한번 받은 적이 없고
훈장처럼 징계, 구속도 당하지 않았으며
입으로 비정규직 철폐, 노동자는 하나다 같은 구호 따위에
들뜬 일상을 뜬구름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그러는 사이 누구는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었고
문학상을 받고 동인의 회원으로 고상한 언어를
밥이 되는 소설과 시를 내리갈길 때
나는 동료에게 어용이라고 욕지거리 몇 마디 퍼붓고
명예훼손, 모욕죄에 기소당해 벌금을 맞고
돈 백만 원이 아까워 잠 못 이룬 몇 날 밤
그런 날이며 서산의 그림자를 따라 인생을 보내고 싶었고
바람에 흔들리며 칠흑 같은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다
나는 세상을 바꾸려는 거대한 파도나
거대한 사상의 거처가 되지 못하고
모욕, 명예 같은 사소한 것들에 자꾸만 흔들리고
견딜 수 없는 가벼움이 가득한 나날들이었다
그런 나에게 대중성은 언감생시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등대처럼 세상을 비추는 일은 나에게 과분한 일이었다
--
나의 시론
--
나의 시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을
구호가 시가 될 수 없다
외침이 문장이 될 수도 없다
유구한 삶이 그렇듯
삶이 보이지 않을 때 시가 보인다
삶이 죽을 때 시가 살아난다
나의 시어는 죽은 언어들의 나열
보아라 저 화려하고 수사가 넘치는
장엄하고 현란한 언어 잔치
그러나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세상의 끝은 광속이다
나의 시의 절규는 사치다
나의 시의 절망은 현실이다
내 언어에는 심연이 없다
그런 날은 시보다 낮술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