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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67070883
· 쪽수 : 456쪽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허무를 직면하다
1. 허무의 물결 속에서
봄날은 간다
─ 아름다움을 보다
허무 속에서 글을 쓰다
─ 허무 속에서 쓰다
폐허를 응시하다
─ 누가 폐허에 서 있는가
수평선을 보다
─ 구상과 추상을 넘어서
갱생을 위하여
─ 파도의 연대기
2. 부, 명예, 미모의 행방
인생은 거품이다
─ 아이도, 노인도, 영웅도, 해골도 모두 거품을 분다
죽음과 함께 춤을 추다
─ 시대마다 달리 추는 죽음의 춤
시체를 보다
─ 미인도 죽으면 썩는다
해골에게 묻는다
─ 필멸과 직면하다
3. 시간 속의 필멸자
시간이란 무엇인가
─ 시간의 경쟁자들
시간 속의 삶
─ 일상의 신성함을 그리다
삶은 악보가 아니라 연주다
─ 재즈 연주
정체성은 시간을 견디기 위한 ‘허구’다
─ 테세우스 배의 정체성을 찾아서
4. 오래 살아 신선이 된다는 것
노년을 변호하다
─ 결국 다가오는 노년
자각에 이른 치매 노인 이야기
─ 삶의 계절을 상징하는 꽃
자유인과 호구 사이에서
─ 그 자체로 존재하는 나무
신선을 보았는가
─ 신선을 보다
5. 하루하루의 나날들
시시포스 신화는 계속된다
─ 노역이 너희와 함께하리라
삶의 쳇바퀴를 사랑하기 위하여
─ 일상의 예술성을 찾아서
구름을 본다는 것은
─ 구름과의 만남
느린 것이 삶의 레시피다
─ 천천히 흐르는 세계
6. 관점의 문제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법
─ 넓은 시야를 찾아서
모사를 넘어서
─ 모사와 창작의 경계에서
산속에서는 산의 참모습을 볼 수 없다
─ 중국의 여산
정신승리란 무엇인가
─ 풍자화 속에 등장하는 여우와 신 포도
7. 허무와 정치
경쟁할 것인가, 말 것인가
─ 적벽과 파도
좋은 의도의 정치
─ 포르투나와 운명의 수레바퀴
정치도 연애처럼
─ 시간의 풍화
대성당을 가슴에 품다
─ 성당을 보다
8. 인생을 즐긴다는 것
삶을 유희하다
─ 유희로서의 삶
달콤함의 레시피
─ 달콤함을 그리다
인생의 디저트를 즐기는 법
─ 달콤함의 시각적 즐거움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향하여
─ 무엇을 얼마나 먹을 것인가
에필로그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위하여
부록
소식의 「적벽부」 (번역문|원문|해설)
─ 송나라와 명나라의 적벽도 세계
도판 목록 및 인용문 출처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인간은 문화적 양서류다. 인간은 메마른 문화의 사막에서는 살 수 없다. 앞서 살았던 이들이 축적한 문화 속을 유영하면서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물거품 같은 삶 속에서 문화라는 또 다른 물거품을 만들고, 그 물거품들이 모여 마침내 깊고 넓은 문화의 바다가 된다. 인간이 풍요롭게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문화의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산다는 것이다. 인간이 허무한 삶을 그나마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깊고 넓은 문화 속에서 유영하기 때문이다. (중략)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공간적 제약 때문에 채 싣지 못했던 도판과 해설을 마음껏 실으면서 바다로 돌아가는 양서류 인간처럼 희열을 느꼈다. 천천히 삶의 욕조에 물을 채우는 기분으로 이 책에 들어갈 그림을 고르고 텍스트를 선정했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좀 더 풍부한 상징과 기호와 이미지의 바다에서 헤엄치기를 기원하면서. ― 「책을 펴내며」 중에서
제작 시기를 특정할 수 없는 이 판화의 주제는 ‘덧없음’이다. 왼쪽에 있는 모래시계를 보라, 시간 속의 존재들은 아이가 불고 있는 거품처럼 사라져갈 것이다. 아이가 끌어안고 있는 해골처럼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화병 속의 꽃조차 예외가 아니다. 다른 시간 속의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저 꽃도 시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이 판화의 왼쪽 배경에는 다름 아닌 무덤에서 부활하는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부활한 예수는 시간 속의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존재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모든 것이 덧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존재들만 덧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구원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 「아름다움을 보다」 중에서
이것은 추상인가, 구상인가? 이 질문은 무의미하다. 이 그림을 보여주자 총이라고 한 사람도 있었고, 손도끼라고 한 사람도 있었고, 유명 가수의 가발이라고 평한 사람도 있었고,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머리 부분만” 그렸다고 농담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 그림을 일종의 구상화로 본 것이다. 반면, 이 그림을 일종의 추상화로 보며 감탄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그림이 추상이냐 구상이냐 여부도 상당 부분 보는 자의 눈에 달린 것이다. ―「구상과 추상을 넘어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