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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한국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25126371
· 쪽수 : 432쪽
책 소개
목차
이 남자가 사는 법
이 여자가 사는 법
그 남자가 사는 법
사는 법
작가 후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2011년 10월 25일 아침. 이지훈의 그림자는 주민 센터를 향하고 있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태양이 등 뒤에서 그를 부추겼다. 3주 전처럼 긴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 탓에 심장이 뛰었다. 새시 문을 밀고 주민 센터에 들어갔다. 동시에 그를 반겨주었던 3주 전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업무준비가 되지 않은 듯 공무원들은 분주해 보였다.
너무 일찍 왔나. 맞은편 벽에 있는 시계가 8시 56분을 가리켰다. 그래도 4분 정도야.
“저 주민등록증 찾으러 왔는데요.”
“아, 네.”
대답을 얼버무린 그녀가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러나 새로이 발급받을 주민등록증을 꺼낸 것은 아니었다. 고개를 잠깐 숙인 그녀가 얼른 뒤에 있는 시계를 향했다. 손에 쥔 볼펜을 책상 위 고무판에서 빠르게 두드려 댔다. 그러다 볼펜을 놓쳤다. 잠깐이지만 그녀의 손이 파리하게 떨렸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노숙자 생활을 하며 모든 것이 무뎌졌지만 단 하나 날카로워진 것이 있다면 타인에 대한 감각이었다. 그를 지나치는 누군가가 그에게 천 원짜리 한 장을 던져줄 의향이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욕을 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경멸에 찬 눈길을 보낼 것인지 따위의 본능적인 그런.
지금 저 여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의 감각이 그를 부추겼다. 그래, 그녀는 떨고 있다. 그를 보자마자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짧은 찰나, 뇌는 그에게 결론을 속삭였다. 그녀는 겁을 집어먹고 있다고. 다시 왜, 라는 질문이 뇌를 향했다. 단지 그를 보았기 때문에.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왜 그를 보자 그녀는 손이 파리하게 떨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듯 시계를 보며 초조해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녀는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곳으로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그때 창구 너머 뒷문을 통해 한 남자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그는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녀가 고함을 질렀다.
“이 사람이에요, 살인자 이대형!”
팔을 펼친 그녀가 검지로 그를 찌르듯 가리켰다. 뒷문을 통해 들어오는 남자에게.
살인자, 이대형? 무슨 소리일까. 살인자라니. 난 이지훈인데.
“제기랄.”
백용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애꿎은 땅을 발로 찼다. 아련한 통증이 척추까지 전해졌다. 모든 것이 단 10분 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찜질방에서 주민 센터를 향해 걸어오던 도중 박미숙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사람이 왔다며 벌벌 떨고 있었다. 급하게 택시를 타고 방이1동 주민 센터에 도착한 것은 찜질방에서 시계를 본 지 7분 뒤였다. 후다닥 주민 센터 뒷문으로 뛰어들었다. 놈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녀석은 재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박미숙의 행동에서 눈치를 챘으리라. 이럴 줄 알았으면 박미숙에게 살인자라고 말하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녀석은 정말 살인자였을까? 주민등록을 다시 하겠다고 버젓이 동사무소까지 찾아왔는데 들킬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아니라면 어떤 커넥션이 그의 뒤를 받쳐 주는 것일까?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내내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그저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도망칠 거였으면서 굳이 주민등록을 만들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저렇게 배짱 좋은 살인자가 또 있을까.
가판대에 걸려 넘어진 발목에 알싸한 통증이 전해졌다. 그리고 이대형이 잡아탄 택시가 통증과 반대로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