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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25128641
· 쪽수 : 536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제1장 죽기에 좋은 시간
제2장 위학증의 주본
제3장 한 가지 기발한 계책
제4장 춘산에 불이 나니
제5장 음모
제6장 폭발하는 살의
제7장 두 개의 태양
제8장 흰옷
제9장 한 사나이가 길목을 지키면
제10장 팔사품의 소용돌이
제11장 미궁의 붉은 바다
제12장 그날 이후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9월 22일, 이순신은 권율의 밀서를 받았다. 이순신은 3일에 받은 이연의 밀지에 이어, 지난 13일에는 영의정 류성룡의 사신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그도 일이 돌아가는 대강의 낌새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순신은 ‘27일에 반드시 출동하라’는 권율의 명령을 받고는 대략 난감했다. 작전개시 5일 전이었다. 대부분의 군졸들은 가을걷이 휴가 중이었다. 정성들인 둔전 농사의 첫 소출인 가을걷이를 못하면 군사건 민간인이건 모두 굶어죽을 판이었다. 이순신은 막막했다. 자신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왜 이 쓸데없는 소란을 피우는가?’
9월 23일, 이순신은 비변사로부터 ‘매복한 뒤 깃발, 징, 북 등으로 왜적들을 유인해 공격하라’는 ‘기책’을 전달 받았다. 잠시 후, 경상 우수사 원균이 왔다. 원균은 비밀작전 얘기를 하자며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예의 그 쓸데없는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이순신은 마음이 답답해 바닷가 탁 트인 곳으로 원균을 데리고 갔다. 하지만 원균은 날이면 날마다 지겹도록 보는 바닷가 풍경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물론 이순신의 지금 심경 따위는 지겨운 바닷가 풍경보다 더 관심이 없었다. 그의 눈에 이순신이 보일 때마다 머릿속엔 언제나 이런 생각만 들곤 했었다.
‘저게 대체 인간인가, 목석인가?’
사실 원균 스스로도 자신이 조금 이상할 때가 있었다. 이래저래 이순신과 감정상의 구원이 있다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순신만 보면 자신의 행동이 왜 그렇게까지 과장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원균은 어떤 순간에도 극단적으로 감정표현을 절제하는 이순신이 너무 싫었다. 그가 보기에 거드름을 피우는 건 자신보다 이순신이 더했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거드름이 아닌 척 거드름을 피운다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이제 뭔가 기회가 온 듯싶었다. 그는 지금 행운이 독 안에 들어있기라도 한 듯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그는 이순신을 향한 거드름을 거두지 않고, 도발적인 사설을 본격적으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통제사는 어떻게 보시오? 거제도를 쓸어버리고 보급로를 차단할 수 있다면 왜놈들 모두 독 안에 든 쥐 아니겠소? 푸하하하.”
이순신은 시도 때도 없이 코를 벌름거리며 허접하게 웃는 원균의 저런 모습이 특히나 가소로웠다.
“잘됐으면 좋겠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