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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29828219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1~8
외전
작가후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다시 혼자만의 시간이 다가왔다.
문장 노동자라는 비유처럼 언어로 문장을 만들어 지어먹을 숨 가쁜 시간이.
오두막 안의 치열함은 어느새 급박한 수준으로 치달았고 밖은 그 못지않게 음습해졌다.
한 방울. 한 방울. 어느새 숲이 물기를 품으며 젖어 가고 있었다.
아주 작은 한 방울을 시작으로 방울방울.
작은 방울로 시작해 제법 빗방울이 커졌다.
‘프랑스 작가가 그랬대. 비가 내릴 때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고.’
꽤 오래 전 주이주가 인근 남학생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날리던 시절, 교복을 제복처럼 소화하며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 한 말이었다.
늘 두 손을 뻗으며 제멋대로 다가와 안기는 이주였다.
그 순간은 바이러스 감염과 같아 피할 도리가 없었다. 벗어날 구멍도 없고.
아니 피할 수 없었다. 온몸의 피가 주이주를 향해 열렬히 기립한 상태라.
‘비가 내릴 때 사람들이 센티해지는 건 사랑받고 싶어 하는 자아가 발열하는 열기라고 했어. 멋있지? 작가의 낭만적인 해석이.’
그때부터 작가의 기질이 있었다, 비가 오면 센티해지는 꼬맹이는.
비가 오는 날 곤란해지는 건 그 누구보다 한율이었다.
순백의 속옷이 비치는 채로 달라붙어 알 수 없는 한숨을 토하는 이주는 그야말로 악마였다.
비가 오는 날은 솔향기 가득한 숲도 그렇고 모두의 체향이 깊어지고 그윽해졌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 주이주는 늘 품 안으로 파고들며 어른이란 타이틀로 인해 스스를 한계로 모는 그를 무자비하게 괴롭혔다.
어린 사랑은 늘 처지곤란이었다.
지금은 그 시절이 그립기만 했다. 그 당시는 그가 힘들어한다는 걸 알면서 모른 척 매달리는 이주가 악마처럼 느껴져 떼어 놓기 바빴는데 비가 오는 지금 지워지지도 바래지지도 않는 기억은 잔인할 정도로 아름답기만 했다.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를 뿌려 댔다.
그 힘찬 소리와 은근한 추억에 빠져 있는 한율을 전화벨 소리가 깨웠다.
-김 대표 난데…….
걱정 가득한 부용 아줌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이주, 지금 숲에 있는 것 같아…….
순간 벼락을 동반한 천둥소리를 들으며 한율의 시선이 숲으로 향했다.
-나한테는 잠깐 외출한다고 했거든. 핸드폰은 늘 그렇듯 집에 둔다고 하고. 해서 가는 방향을 보니까 가방을 메고 숲으로 가더라고. 아무래도 글 쓰는 것 때문에 그런가 싶어 내색 안 했는데…… 이렇게 비도 오고 천둥까지 치니까 김 대표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걱정 가득한 전화를 끊은 한율은 검은 숲을 주시했다.
주이주가 갈 곳은 하나였다. 조용하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곳.
한율은 현재 군산에 있는 윤 비서에게 문자를 남기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이 순간 다른 건 필요 없었다.
저처럼 요란한 소리와 불빛은 천둥과 번개일 뿐, 한율이 가는 방향과 목적지와는 별개였다.
숲을 얕보지 않지만 이 순간 두렵지도 않았다.
지금 걱정되는 건, 이주뿐이었다.
김한율의 유일무이하니 난폭한 심장, 주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