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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인생

잡초인생

최양호 (지은이)
  |  
세화(도서출판)
2012-01-20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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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인생

책 정보

· 제목 : 잡초인생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1706765
· 쪽수 : 382쪽

목차

1
젊은 청년 성천이의 요절! 15
피난 대열에서 짐으로 분류되다 21
집안 아저씨의 꼬임 31
댑싸리비로 왼쪽 눈을 얽다 34
중학교 진학 43
객지 생활의 시작 56

2
대구에서 객지 생활의 시작 67
1차 미국 도미 시험 85
미국으로 출발 97
군입대 108
공수특전단으로 전입 125

3
경애와의 만남 139
1968년 1월 21일 김신조의 출현 166
사회인으로의 첫발 172
두번째 미국으로의 교육 파견 174
National Guard(정부군) 지원 175
어디까지 가나 될대로 되어보자 190
James와 Nancy의 한국 방문 198

4
여정이와 209
미국 이민 신청 215
캐나다 이민 신청 218
경주로 진 빚을 갚으러 내려가다 224
몬트리올 도착 229
토론토로 이주 240
IBM 입사 242
여정이 부모로부터 딱지 통보 253

5
Aerospace로 직장을 옮기다 271
다혜는 나를 거두었다 292
컴퓨터 사업 301
새벽잠을 흔든 아버지 306
딸들의 결혼 326
어머니 중풍으로(Stroke) 병원에 입원 339
정년 퇴직 347

저자소개

최양호 (지은이)    정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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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머리말]

한국서 썩어가는 잡초 뿌리를 옮겨다 미국과 캐나다에 옮겨심으니 산삼 뿌리로 변했다.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아마 지금쯤 홀아비로 일찍 실직이 되어 고생고생하며 살다가 굶어서 죽었을 지도 모른다.
한국에선 내가 갖춘 자격의 미달(Disqualify)로 방황만 하다 미국과 캐나다가 반겨 주어 이곳에 이민을 와서 IBM과 Aerospace Honeywell(우주 산업체 회사)를 전전하며 우주산업체 엔지니어로 열심히 일하다 보니 정년을 넘긴 이 나이에도 강퇴, 명퇴를 모면하고 연봉에 정년퇴직금까지 합쳐 받으며 내년에도, 또 후년에도 일을 하려고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 된다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난 부모님을 싫어한다.
즉 난 무능한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세상에서 제일 무능한 사람들은 우리 부모님이였다.
내 주위 친구 부모님들은 굶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들 공부 시키기 위해 온갖 애를 쓰고, 홀어머니일 지라도 콩나물, 두부 팔아서 자식 공부와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우리 부모님은 자식을 낳아놓고 인간은 모두 자기 먹을 복은 자기가 갖고 태어나게 마련이라고 하며 각각 타고난 제 복대로 살라고 그대로 방치했다.

주위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들께 말 한마디라도 공손히 잘하고, 평소 남들과 대화를 할 때도 자기 부모님에 대한 효심들이 저들의 깊은 가슴을 흔들며 흘러 나오는데 난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난 이럴 때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기본이 되어 있는데 왜 나만 이렇게 나쁜 놈이 됐나 생각한다.
솔직히 난 내 맘 저 깊은 구석에서부터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전혀 없다.
난 부모님한테 지금까지 효심이 생겨서 행동한 적은 한 번도 기억에 없다.
다만 내가 해야 될 기본 의무만 행동에 옮길 뿐이다.
한국에 부모님이 계실 당시엔 곤경에 처할 때마다 돕고, 결국엔 오갈 곳 없는 상황에 처해 하는 수 없이 부모님을 캐나다에 초청하여 싫든 좋든 지금까지 뒤를 돌봐 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심사가 틀릴 때마다 한국에서 돈 잘 벌어 베개 속에 현금 쌓아 놓고 사는 걸 왜 초청해 왔느냐고 소릴 버럭버럭 지른다.
이게 망령인지 아니면 어머니께서 지금까지 나에게 대한 과거를 덮기 위한 억지를 쓰는 건지 분간이 안 된다.

5남매를 낳아 놓고 자기 먹을 건 다 자기가 갖고 태어난다는 부모님의 철학대로 방치를 해두어 모두가 겪어야 할 건 피나는 고생과 사회로부터의 버림이었다.
아버지는 10여년 전 저세상 사람이 되어 캐나다 동산에 모셨고, 어머니는 2010년 11월 중풍으로 쓰러져 양로원에 누운 채로 신경질을 부릴 대로 부리고 똥오줌을 받아내게 하는 신세에 그래도 자식들 이름 하나하나를 불러댄다.
하지만 형, 동생들 모두 한국에서 살기 바빠서 올 수도 없는 형편이고 그들 또한 큰 관심조차 없다.
한마디 더 거들면 비싼 돈들여 서로 반갑지도 않은 관계, 인사치레로 올 바엔 그럴 필요 없고 또 만난다고 큰 위로 또한 되는 일도 아니니 그리 알고 오지 말 것을 당부했다.
내가 어차피 짐을 졌으니 형제들에겐 그저 부모님 생각은 잊고 각자 자기들의 생활이나 충실히 해줄 것을 당부했다.
매일 찾아가서 어느 교회 권사님께서 두꺼운 종이에 정성스레 만들어다 주신 주기도문을 손에 쥐어 주며 하루 100번씩 읽으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권하고 온다.
그렇다고 내가 종교의 힘을 빌리자는 게 아니고, 그런걸 기대해선 더더욱 아니다.
다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통상 하는 식을 나도 따라서 그저 해보는 소리일 뿐이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건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난 후부터 어머니는 내가 평소 제일 싫어하는 외할머니로 급속히 변해 가는 걸 느끼면서부터다.
그리고 나의 불효를 만천하에 알리고 나 같은 불효자가 이세상에 다시 없기를 바라는 맘에서이며, 평소 부모님한테 나몰라라 하던 형제들이, 나한테 부모님을 맡겨놓고는 일부 형, 동생들은 내가 부모를 잘못 모신다고 주위 친지들께 나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 걸 들으며 이 답답한 심정을 이 기회를 통하여 털어놓았다.
안경을 맞추러 가서 내 왼쪽 눈동자가 얽어서 잘 안 보이는 걸 아내가 이제사 발견하고, 왜 평생을 숨겨 왔느냐고 해서 이젠 말할 수 있을 때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 어렸을 적에, 7명의 이모들, 손자, 손녀들이 여름 방학 때면 외할머니 댁에 와서 놀다 가는 게 통례로 되어 있었다.
나는 어려운 집의 자식이라 눈치가 보여 그런 곳엔 가지 않는 편인데 이날따라 이종 4촌들의 노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라도 보고 오려고 맘먹고 그곳에 갔다.
산등성이를 돌아드니 그들이 마당에서 뛰어 노는 모습이 보였다.
맘이 급해 뛰다 걷다, 걷다 뛰다 결국 마당에 당도했다.

외할머니는 댑싸리비를 들고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차마 서울에서 내려온 귀한 손자, 손녀들을 매타작하기엔 뭐 한판에 내가 나타나니 그 매타작은 제일 천하게 자란 내 몫이 됐다. 나를 골라 친다는 게 하필 눈을 후려쳐, 난 졸지에 눈을 맞아 피를 흘렸고 그때 눈동자가 얽은 후론 시력이 형편없이 떨어져 평생을 안개낀 눈으로 살아왔다. 난 그렇지 않아도 다른 이종 사촌들 있는 곳에선 기가 죽어 항상 말한마디 못하고 조용히 구석 자리에서 난 언제 저런 날이 올까 하며 눈치만 살피다 힘없이 조용히 사라지곤 했는데, 그날도 그들이 떠들며 노는 자리에 막 도착 하자마자 영문도 모른 체 당했으니 부모가 무능하면 그 자식들도 어딜가나 푸대접을 받게 마련이란 걸 알면서도 왜 내가 그곳에 갔었나 하고 평생을 후회하며 살고 있다.
오래 쓰라고 대나무를 섞어 만든 댑싸리 비로 얻어 맞고, 두 손으로 피가 흐르는 눈을 움켜쥐고 땅에 구르다 매가 더 가해질 걸 우려해 자리를 박차고 도망을 치니 시끄럽던 분위기는 일단 평정이 됐다.
그 당시엔 어른들 한테 맞는 건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다 애들 잘되라고 한 매질이니 고맙게 여기며 살아야 했다.

난 재수가 없는 사나이다.
처음 태어나서도 어떤 때라도 가족의 대열에서 형평상 제외 되어야 했고, 평소에도 나와 재수는 평행선을 긋고 달렸다.
초등학교 때 밤잠을 설치며 기다렸던 소풍날 아침에는 꼭 비가 쏟아졌고, 군 생활 때도 제대 특명을 받아 놓고 공비 김신조가 내려오고, 공비들의 연속 출현으로 제대말년에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되어 죽을 고비를 넘나들었고 제대가 연장됐다.
자동차를 몰고 다니다 보면 빨간 불에 걸리기 일쑤고, 주행하던 길이 느려 빠른 길 쪽으로 선을 바꾸면 그쪽 길이 영락없이 느려지곤 했다.
비행기를 타려면 틀림없이 2~3시간 이상씩 지연은 당연했고.
키마저 작아(158cm) 항상 내 이름은 고등어 토막이란 놀림의 대상이, 얼굴은 도시락통 처럼 사각형으로 광대뼈가 나왔고, 눈은 새우 눈으로, 콧등엔 까만 점까지 박혀있는 못생긴 그야말로 어딜 봐도 복 받을 곳 없게 태어난 사나이다.
이런 모든 조건들은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도 악재였다.

남들처럼 행복하게는 못살 망정 내가 발 붙일 곳을 찾아 평생을 헤메 다녔다. 정든 고국에서는 내가 갖춘 열악한 모든 조건들로 기회가 주어지질 않았고, 설상 주어져도 백에 밀리고 돈에 밀려 결국 떨어질 형편이었다.
하는 수 없이 살기 위해 정든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생면 부지의 나라 미국과 캐나다가 오히려 내가 갖춘 자격을 그대로 받아주고 반겨주어 이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한국에서 고생고생하며 천민 대접 받던 내가 서양에선 양반 대열에 서게 됐으니 내 나름대로 출세를 한 셈이다.
모자라는 모든 걸 남의 나라에서 더 배우고 더 채워 가며, 이곳에서 결혼까지 하여 딸 둘 낳아 일류 대학, 대학원 졸업 시키고 한국 청년들(은행, 의사)한테 결혼시키고 나니 이제부터라도 앞으로 남은 여생을 고국을 떠난 후로 지금까지 못한 조국에 대한 충성을 하고파 매년 가을 휴가 때마다 한국을 찾아가 서성거린다.

내가 한국에 살 당시엔 호적등본 하나 떼려면 3일씩 동회에 급행료 들고 나가던 한국이 이젠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으로 전 세계의 여왕이 됐고, 쇼트트랙 한국 선수들이 1, 2, 3등으로 줄지어 들어와 쾌감을 느끼게 하고, 박지성 축구선수는 유럽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 메모리와 LCD 화면은 전 세계의 얼굴이 되었고, 하이웨이엔 현대차가 질주를 하고 있다.
이토록 조국이 발전해 가고 있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나, 그 뒤편엔 아직도 나와 같은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들이 여럿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그들이 혹시 이글을 읽으면 조금이라도 위안과 희망, 용기를 갖기를 바란다.

난 책 쓰는 데 소질도 없고, 쓰고 싶지도 않다. 책은 이 자전소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해 놓았다.
처음엔 자서전을 쓸 예정이었으나 혹 등장 인물들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어 조금 수정을 했고, 정확한 일자들 또는 조국에서 60년대 겪었던 모든 일들이 내 것과 다른 분들 것과는 다를 수도 있어 자전소설이라 명했다.
앞으로는 나를 위해 평생을 바친 아내를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며, 또 지금까지 나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꼭 인사를 드리고, 두 딸들이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살려고 한다.

우리 부모님처럼 자식을 낳아서 자식들 한테는 타고난 제 복대로 살라고 한 후, 노후엔 자식으로서 부모한테 도리를 잘 하라는 식의 부모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이 책을 잡초인생(The life of a weed)이라고 책명을 붙여준 같은 직장 상사 Dan Schubert(스위스 출신)에게 감사하며, 출판사를 못 찾아 헤맬 때 출판사 친구를 소개해준 평생친구 대림산업 최남구 이사, 이글을 편집해 준 아내 장진경, 세화 출판사 편집장 권미형씨 출판을 쾌히 승낙해주신 박용 세화출판사 사장님께 감사드리며 또 이글을 쓰도록 권한 두 딸 Eunice와 Suzy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보낸다.

최 양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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