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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29764
· 쪽수 : 296쪽
책 소개
목차
눈의 황홀
네로의 詩
하양
숲의 고요
실꾸리
흙, 일곱 마리
구두
단어의 삶
해설 “네가 다른 것이 되고자 소망한다면”_ 오혜진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신축 건물로 이주할 자격을 얻으려면 뼈 빠지게 불을 질러야 한다. 하루라도 쉬면 밀린다. 있는 것을 얼마나 태워야 새것을 얻을 수 있나. 그저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줄을 잘 서야 한다.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런 것을 갖게 될 것이다._「네로의 詩」
주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억새만 나부끼고 아무도 없다. 순식간에 깃발도 사라져버렸다. 여기부터가 진짜라고 했는데 다들 어디로 간 걸까. 아우성치는 벌판은 위기감 없는 전쟁터와 비슷했다. 여자는 방향을 찾지 못해 허둥거리다 슬슬 초조해졌다. 숨이 턱에 찼다. 대체 밥은 언제 먹으려고 이렇게 진을 빼나. 어쩌다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단지 밀린 업무를 소화하기 위해 그림을 받고 싶었는데. 여자는 숨이 턱에 차 헐떡거리며 비탈을 올랐다. 지금쯤 회사의 동료들은 오전 회의를 마쳤을 것이다. 석 달 전에 대리가 되었으므로 실적을 내놓아야 한다. 그림, 선생의 그림을 포기하면 안 되는데. 그런데 선생의 얼굴을 보면 그림 달라는 말이 쏙 들어간다. 전임자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 포기하게 된 걸까. 대체 무슨 주술을 걸었기에. 길은 몹시 가팔랐다._「하양」
담장 안에 안주하지 말라는 지적은 창피했다. 주섬주섬 구차한 변명을 했던 것 같다. 납득할 수 있는 그림에 대해 말했던가. 그런데 담당자의 격려를 받자, 기다렸다는 듯 내 안에서 요동치던 어떤 이미지가, 마치 아나콘다처럼 힘차게 공중으로 힘차게 솟구쳤다. 새 떼처럼 우르르 날아 저 멀리로 사라져버렸다. 내 안의 오욕칠정이 빠져나갈 통로를 찾은 건가. 나도 날고는 싶다만…… 내가 겁을 먹고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_「숲의 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