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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동유럽소설
· ISBN : 9788932404677
· 쪽수 : 644쪽
책 소개
목차
제1장 병유리를 통해서 본 민첼과 보쿨스키 회사
제2장 늙은 점장의 경영
제3장 늙은 점원의 회고(1)
제4장 귀환
제5장 귀족의 민주화와 상류 사교계 아가씨의 꿈
제6장 낡은 지평선에 어떤 식으로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는가
제7장 비둘기가 뱀을 만나러 나오다
제8장 명상
제9장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는 외나무다리들
제10장 늙은 점원의 회고(2)
제11장 오래된 꿈과 새로운 만남
제12장 다른 사람의 일로 돌아다님
제13장 대귀족들의 놀이
제14장 처녀의 꿈
제15장 열정은 인간의 영혼을 어떤 식으로 뒤흔드는가
제16장 ‘그 여자’ -‘그’ 그리고 다른 사람들
제17장 여러 가지 씨앗과 환상이 싹트다
리뷰
책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 아가씨는 결혼을 혐오하고 남자들을 가볍게 경멸했다.
잠옷 차림의 남편이 아내 옆에서 하품을 하고, 시가 냄새 가득한 입으로 아내에게 키스하고, 그리고 자주 이렇게 소리 지른다. “좀 조용히 해” 혹은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이런 남편들은 아내가 모자 하나 새로 사면 집 안을 발칵 뒤집어 놓고, 밖에서는 여배우들에게 마차 살 돈을 준다. 도대체 전혀 흥미 없는 족속들이다. 그리고 더 가관인 것은, 이런 남편들 모두 결혼 전에는 정신없이 매달렸고, 오랫동안 못 보면 몸이 야위고 초라해졌고, 만나면 얼굴이 붉어졌고, 사랑을 위해 죽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도 했다.
그래서 이자벨라는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남자들에게 폭군처럼 냉정하게 행동했다.
“보쿨스키? 보쿨스키……” 이자벨라는 속삭였다. “갑자기 사방에서 여러 형태로 그녀에게 나타난 보쿨스키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는 아버지와, 그리고 고모와는 어떤 관계인가?”
몇 주 전부터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인가 들었던 것 같다. 어떤 상인이 수천 루블을 자선 모금에 기부했다는데 그가 여성 의류를 취급하는 사람인지 모피 장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 어떤 상인이 불가리아 전쟁 때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그 사람이 자기가 이용하는 구두 가게 주인인지, 혹은 자기 머리를 손질해 주는 미용실 주인인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자선 모금에 큰돈을 내놓았고, 많은 재산을 모았다는 상인은 동일인이고 그가 바로 보쿨스키라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이 바로 카드놀이에서 일부러 아버지에게 돈을 잃어 주고, 자존심 덩어리인 백작부인 고모가 “나의 착한 보쿨스키!”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순간 그녀는 그 사람의 표정을 기억했다. 그는 상점에서 자기와 말하려 하지 않고, 커다란 일본 화병 뒤로 물러서서 몰래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어느 날 그녀는 플로렌티나가 초콜릿을 사러 가게에 들어갔을 때 장난삼아 따라 들어가 창가에 앉았는데, 남루한 옷차림의 아이들 몇이 진열장 밖에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자기와 초콜릿과 과자를 배고픈 새끼 짐승들처럼 탐욕과 흥미를 가지고 쳐다보았다. 바로 그런 눈빛으로 그 상인이 자기를 쳐다보았다.
꿈에 잠겨 강가에서 보낸 지난 몇 시간 동안 그의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음을 느꼈다. 이전에는 10년 전, 1년 전, 어제만 해도 길을 가면서 그는 어떤 특별한 것도 만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마차들이 지나다니고, 상점들에는 손님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에게 새로운 감각이 생긴 듯했다. 마치 다리가 부러진 그 말이 겁먹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듯,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말은 안 하지만 그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가난한 여인은 누구나 남의 집 빨래를 해 주느라 비누 때문에 다 망가진 손으로 온 가족을 몰락의 벼랑에서 가까스로 붙들고 있는 여인처럼 보였다. 불쌍한 어린애들은 모두가 얼마 못 살고 이내 죽을 운명을 타고났거나 밤과 낮을 도브라 거리 쓰레기 더미에서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에게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무거운 수레를 끄는 말의 피곤함과 목줄에 스쳐서 피가 흐르는 말의 고통을 그는 느꼈다. 주인을 잃고 길에서 짖고 있는 개의 불안, 젖을 늘어뜨린 채 새끼들에게 줄 먹이를 찾아 헛되이 시궁창을 뒤지며 쏘다니는 바싹 마른 암캐의 절망감을 그는 동감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껍질이 벗겨진 나무줄기, 깨진 보도, 벽에 서린 습기, 부서진 기구, 찢어진 옷도 그를 아프게 했다.
이런 물건들이 병을 앓고 있거나 상처를 입어서 하소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자기만이 그런 고통들을 알아듣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다른 사람과 심지어 동물과 물건들의 고통을 느끼게 된 것은 오늘이고, 그것도 불과 몇 시간 전부터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