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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32404790
· 쪽수 : 676쪽
책 소개
목차
1장 / 2장 / 3장 / 4장 / 5장 / 6장 / 7장 / 8장 / 9장 / 10장 / 11장 / 12장
주
해설 예술 - 인간이 늘 지고 마는 천사와의 싸움
판본 소개
에밀 졸라 연보
책속에서
이 밑그림은 한눈에 보아도 난폭하기 짝이 없었고 색채는 타오르듯 생생했다. 담장처럼 빽빽하게 둘러쳐진 초록빛 나뭇잎들 사이로 햇빛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다만 왼편 숲 속으로 나 있는 어두운 오솔길은 저 멀리 한 점의 빛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유월의 초목들 사이로 펼쳐진 풀밭 위에, 벌거벗은 한 여인이 한쪽 팔을 베고 가슴을 부풀리며 누워 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 어디에도 시선을 두지 않은 채 눈꺼풀을 내리고 있었다. 금빛 햇살이 그녀의 벗은 몸을 가득 적시고 있었고, 그림 뒤편에는 갈색과 금발 머리의 키 작은 두 여인이 역시 벗은 채로 웃으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초록빛 나뭇잎들 가운데서 두 여인의 살결이 아름답게 두드러졌다. 그런데 화가는 전경에 검은색의 대비를 넣을 필요를 느끼고 그 자리에 단순히 벨벳 윗도리를 입은 신사를 그려 넣었다. 신사는 등을 돌리고 앉아 풀을 짚고 왼손을 내보일 뿐이었다.
그는 이번만큼은 직접 자연을 보고 그렸다. 사이즈가 큰 작품을 그릴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이번만은 그 어떤 속임수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완성한 소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심사위원들의 공분을 사서 낙선의 운명을 걸었다. 화가들 사이에서는 술주정뱅이가 빗자루로 그린 그림 같다는 평판이었다. 게다가 그가 입선하기 위해 미술학교의 환심을 사 보려고 작품을 양보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화가는 깊은 상처를 받고 분노로 울부짖었다. 그는 작품이 되돌아오자,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 불태워 버렸다. 이번 그림은 그냥 칼로 찢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았고, 그렇게 없애 버리고 나서야 속이 풀렸다.
클로드의 생활은 아주 비참해졌다. 계획 없는 살림을 꾸려 나가며 점점 더 궁핍해졌다. 2천 프랑의 연금이 한 푼도 남지 않게 되자, 헤어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가난이 덮쳐 왔다. 크리스틴은 일거리를 찾아보았지만,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심지어 바느질도 할 줄 몰랐다. (…) 파리 사람들의 조롱 속에 클로드의 그림은 전혀 팔리질 않았다. 그는 몇몇 친구들과 더불어 작품을 출품하여 따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무지갯빛이 총망라된 알록달록한 그의 그림을 보고 아주 즐거워하며 그를 아마추어의 수준으로 여기기에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