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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32814834
· 쪽수 : 358쪽
책 소개
목차
해설
1부 기독교 교리를 다시 생각한다
1.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라마: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성육신 사건
2.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신조에 담겨 있는 믿음의 내용
3. 도그마는 드라마다: 오도된 기독교 교리에 대한 변론
4. 신조인가, 무질서인가: 신조에 대한 무시와 무질서 양상
5. 기독교 도덕: 재조정되어야 하는 기독교 도덕 기준
6. 다른 여섯 가지 큰 죄: 정욕을 포함한 일곱 가지 죄
7. 왜 일하는가: 창조적 활동으로서의 노동
8. 부활절의 승리: 악의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승리
2부 창조적 지성의 소명
1. 기독교 미학을 정립하기 위해: 플라톤 미학의 이해와 예술의 기독교적 본질
2. 창조적 지성: 언어가 지닌 위력과 그것의 선용
3. 알레고리를 쓰고 읽는 법: 알레고리라는 문학 형식의 가치와 유효성
4. 파우스트 전설과 마귀의 관념: 악역이 미화될 우려가 있음에 대한 경고
5. 키루스에게 드리는 감사: 실존 인물이었던 키루스와 예수
6. 단단한 음식물: 연륜이 있는 자의 의무와 권위
7. 창조적 예술가의 소명: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가의 창조성
저자 연보
리뷰
책속에서
세이어즈는 ‘죄’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역시 사적이고 영적인 면들만을 강조하며 이미 전해진 ‘닫힌 언어’들만을 반복하던 보수적 교회와는 차별적인 차원을 보인다. 세이어즈는 “원죄의 교리가 생물학과 프로이트 심리학을 배운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다시 표현되어야 한다”고 믿었다....그 외에도, 돈을 빨리 벌기 위해서라면 숲을 파괴하고 자연을 착취하는 행위조차 주저하지 않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탐욕’의 죄, 인간의 완전성과 진보를 믿으며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믿는 현대인들의 ‘자만’의 죄, “상업적 목적으로 사람이나 물질을 착취하는 행위”로서의 자본주의적 물질욕’의 죄 등 ‘죄’ 교리에 대한 그녀의 탁월한 현대적 재해석은 그동안 죄를 사적·영적으로만 해석해 온 현대 주류 교회의 오류를 극복하며 현대 문명 안에서 교회의 근본적 역할을 재고하도록 촉진하는 훌륭한 신학적 원천이다.
_해설 중에서
최근에 와서 공식적인 기독교가 상당히 나쁜 평판을 받고 있다. 설교자가 교리를 너무 강조해서 교회가 텅 비게 되었다는 소리를 쉴 새 없이 듣곤 한다. 교리에다‘지겨운 도그마’라는 별명까지 붙이면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정반대다. 오히려 도그마를 무시하기 때문에 지겨움이 생기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야말로 역사상 인간의 상상력을 가장 크게 뒤흔든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그리고 그 도그마가 바로 그 드라마다. 그 드라마는 교회의 신조들 속에 아주 명확히 축약되어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지겹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놀라운 문헌들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거나, 너무 자주 또 너무 기계적으로 암송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드라마는 단 한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이야기 전체가 단 하나의 핵심 문제에 대한 응답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곧 “당신은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우리가 비공식적인 대답(그 가운데 일부는 정말 지겹기 그지없다) 중 하나를 채택하기 전에, 즉 그리스도를 하나의 신화로, 혹은 이상주의자, 민중 선동가, 거짓말쟁이 혹은 미치광이 등으로 치부하기 전에, 그 신조들이 그분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한번 알아봐도 별로 손해 볼 게 없을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_1장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라마’ 중에서
평상시에 우리는 우리가 믿는 신앙이 무엇인지 제대로 탐구하지 않고도 놀랄 정도로 잘 살아가고 있다. 간헐적으로 저 멀리 있던 이런 지적인 문제가 무례하게 우리 마음속에 불쑥 들어오면, 그 침입자를 쫓아내는 방법이 여럿 있다. 자동차를 몰고 파티나 극장에 갈 수도 있고, 탐정 소설을 읽거나 구청에 가서 한바탕 싸울 수도 있으며, 쏙독새의 습성에 관한 글이나 셰익스피어의 해상의 은유에 관한 글을 읽고 독자 편지를 쓸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걸 막으려고 온갖 방어기제를 쌓아올린다. 솔직히 말해, 우리 자신이 아주 두렵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을 공식적으로 진술한 것을 신조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그 의미를 알고자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검토해 보면 그게 아주 이상한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선언하듯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든지, 냉소주의자가 빈정거리듯 사람이 하나님을 자기 형상으로 만들었든지, 사실 결론은 마찬가지다. 즉 이 이상한 신조는 우리에게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의 참 본성에 관한 가장 본질적인 사실을 알려 준다. 그리고 그 본성에 관해 선언하는 내용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로 잘 시인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생각만 하기보다 더 자주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한다고 여기지만 말이다.
_2장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