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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32909073
· 쪽수 : 254쪽
책 소개
목차
절망은 죽었다 (머리말을 대신하여)
바다의 침묵
그날
꿈
무기력
말과 죽음
별을 향한 행진
분노와 부끄러움, 그리고 저항의 기록
베르코르 연보
리뷰
책속에서
그 순간,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거기서 벗어나게 될 거라고. 아! 내가 정확히 그 낱말들을 생각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거짓일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너무나 암울하리라 예견되는 눈앞의 시기보다 훨씬 더 절망적이었던 시대들, 그 끝없는 시기들을 떠올렸다고 말하는 것도. 살인과 약탈과 광적인 무지와 잔인함이 승승장구하는 가운데 거의 천 년 동안,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횃불을 손에서 손으로 전하기 위해 몇몇 수도사들에게 필요했던 필사적인 용기와 초인적인 끈기를 떠올렸다고 주장하는 것도. 물론 나는 그 모든 것을 정확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용을 훤히 꿰고 있는 책의 장정을 볼 때의 느낌과 흡사했다. -20면, 「절망은 죽었다」 중에서
「……몹시 외로울 때, 독일인들에겐 늘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늘 그랬어요. 주인으로 군림하는, 같은 당파의 남자들만 득실거릴 때, 그들보다 더 <외로운> 사람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행히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프랑스에 와 있으니까요. 프랑스가 그들을 치료해 줄 겁니다. 그리고 감히 말씀드리건대, 그들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그들에게 진정 위대하고 순수한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쳐 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혼잣말처럼 절제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는 열린 문을 잡고 잠시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려 뜨개질을 하고 있는 조카딸의 목덜미, 땋아 올린 적갈색 머리카락 아래 드러난 가냘프고 창백한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그는 차분하고 결연한 어조로 덧붙였다.「함께 나누는 사랑이.」 -53~54면, 「바다의 침묵」 중에서
나이가 많이 들어 주름투성이인 뷔페랑 부인이 바삐 오는 그들을 보자마자 가슴에 손을 얹었다. 「오, 주여……!」
아빠가 말했다. 「예, 데려갔어요.」 둘은 들어갔다. 계피 향이 물씬 풍기는 작은 거실에 들어섰을 때, 아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양탄자 위에 드러누웠다.
아이는 어른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너무 깜깜해서 귀 기울여 들을 수가 없었다. 뷔페랑 부인이 갈라지는 작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뭐라고 말을 해댔다. 아이는 그 말이 마치 꿈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 아이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눈물을 삼켰다. 눈물 한 방울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아이는 혀로 그것을 날름 찍어 먹었다. -85~87면, 「그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