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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중동/튀르키예소설
· ISBN : 9788932910666
· 쪽수 : 176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다음은 가장 흔히들 묻는 질문이다.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 왜 그런 글을 쓰는가?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하는가? 노력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당신의 책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당신은 끊임없이 지우고 수정하는가, 아니면 생각나는 대로 단번에 써 내려가는가?
[……]
영리한 대답이 있고 둘러대는 대답이 있다. 간단하고 솔직한 대답은 없다.
그래서 저자는 문학의 밤이 열릴 슈니아쇼르 문화회관에서 서너 블록 떨어진 작은 카페에 자리를 잡으려 한다. 카페 내부는 무기력하고 우중충하고 숨이 막힐 듯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편이 그에게 잘 어울린다. (그는 어떤 모임이든 30~40분 전에 도착하고, 그래서 뭔가 할 일을 찾아내 그 시간을 때워야 한다.) 지친 웨이트리스가 짧은 치마에 봉긋한 가슴을 하고 다가와 행주로 그가 앉은 식탁을 슬쩍슬쩍 문지른다. 하지만 다 닦은 뒤에도 포마이카는 여전히 끈적거린다. 아마도 행주가 깨끗하지 않아서?
그러는 사이 저자는 그녀의 다리를 훑어본다. 발목이 약간 두꺼운 편이지만 맵시 있고 매력적인 다리다. 다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훔쳐본다. 양 눈썹이 미간에서 만나고 머리는 말끔히 넘겨 빨간 고무 밴드로 묶은, 상냥하고 밝은 얼굴이다. 저자는 땀과 비누 냄새, 지친 여자의 냄새를 감지한다. 치마 너머로 속옷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의 눈은 어렴풋이 식별 가능한 그 형태에 고정된다. 왼쪽 궁둥이가 약간 도드라져 올라간 경미한 비대칭이 그를 흥분시킨다. 그녀는 자신의 다리, 엉덩이, 허리를 더듬는 그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역겨움과 애원이 뒤섞인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제발, 날 그냥 내버려 둬요.
열병에 사로잡힌 우리의 저자는 악마의 유혹에 못 이겨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본다. 물론, 잠겨 있다.
그렇다면 너의 수줍은 낭독자는 어쩌고 있을까?
그녀는 오래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너처럼 혼란에 빠진 나방을 유인하려고 야간 등을 켜놓고서.
그러나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그가 조용히 문손잡이를 돌리는 사이 아파트 안에서 소리가 난다. 즉시 그는 생각을 고쳐먹고 달아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계단의 전등도 켜지 않고 한 번에 두 계단씩 뛰어 내려가다 마지막 모퉁이에서 발을 헛디디고는 계량기 함에 어깨를 세게 부딪치고, 그 바람에 경첩 하나에 기적적으로 매달려 있던 계량기 함 문짝이 떨어져 나가 난간에 부딪혀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고, 아마 〈야니브 슐로스베르그의 집〉이라고 적힌 아파트일 텐데, 그 집 문이 열리고 남자가 묻는다. 실례지만, 이 야심한 밤에 누굴 찾아왔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그가 그를 알아볼까? 신문에 실린 사진들이나 텔레비전의 인터뷰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그런데 그는 뭐라고 둘러댈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 전 하이드라고 합니다만, 급하게 지킬 박사를 호출해도 되겠습니까?
네가 없이도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왜 글을 쓰는가? 왜 말이 아닌 것들을 말로 묘사하는가?
게다가 너의 이야기들은, 목적이 있다면, 어떤 목적에 봉사하는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이런 질문을 하자니 미안하지만, 좌절에 빠진 웨이트리스, 고양이와 사는 외로운 낭독자, 몇 년 전 파도의 여왕 선발 대회에서 입상한 여자를 등장시켜 온갖 종류의 닳아빠진 섹스 장면을 보여 주는 초라한 환상을 누가 필요로 하는가? 저자가 여기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부디 너 자신의 언어로 간략히 설명해 주기를 바란다.
그는 부끄러움과 혼란에 휩싸인다. 그는 그들 모두를 저 멀리 무대 끄트머리에서, 그들이 단지 자신의 책에 써먹기 위해 존재하는 대상인 양 관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진사의 낡고 검은 보자기 속에 영원히 머리를 파묻은 채 만지거나 만져질 수 없는 아웃사이더라는 깊은 슬픔이 부끄러움과 함께 밀려온다.
존재하는 것들에 관해 글을 쓰는 것, 색이나 냄새나 소리를 말로 포착하려는 것은 슈베르트의 곡을, 슈베르트가 앉아 있고 어둠 속에서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올지 모를 강당에서 슈베르트의 곡을 연주하는 것과 다소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