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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32910680
· 쪽수 : 472쪽
책 소개
목차
현재의 이야기
리뷰
책속에서
오를랑도는 몸을 벅벅 긁고 있다. 그러자 김과 페트나가 뒤를 따른다. 그다음엔 에스메랄다 차례이다. 빨간 머리의 뚱보 여인은 이렇게 설명해 준다.
「몸을 긁는 건 전락의 첫째 단계지. 그러니 가능한 한 오래 긁지 말고 버텨 봐.」
그제야 카산드라는 피부가 가렵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간밤에 벌레들이 여기저기를 물어 놓은 탓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길고 뾰족한 손톱으로 부드러운 표피를 벅벅 긁고 싶은 유혹에 애써 저항한다.
하지만… 긁으면 얼마나 시원할까!
「전락의 둘째 단계는 <혼잣말>을 하는 거야.」 붉은 쪽머리의 여인이 알려준다.
「셋째 단계도 있지.」 페트나가 말한다. 「하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될 거다.」
- 1권
그녀는 처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들은 보긴 하지만 눈여겨보지는 않아. 듣긴 하지만 귀 기울여 듣지는 않아. 알긴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해.> 그리고 난 이 말도 덧붙이고 싶어. <미래를 아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야.>」
「왜요?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알고 싶어 할 것 같은데요.」
「너와 나, 우리는 미래에 관심을 갖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의 지평선을 보지 않으려고 오히려 고개를 돌려 버린단다. 두렵기 때문이야. 미래를 생각하면, 자신에게 닥치게 될 그 모든 불행한 일들을 보게 될까 봐 두려운 거야.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남아 있고 싶은데 말이야…. 그들의 길의 끝에는,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죽음이 기다리고 있지. 두 눈을 크게 뜨고서 그 죽음을 향해 걸어가야만 하거든. 그게 너무도 힘든 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알고 싶다고 말해요….」
「그들의 말을 곧이들어서는 안 돼. 귀 기울여서 그들의 깊은 생각을, 실제의 생각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단다. 인간들이란 자주 생각과는 정반대의 것을 말하지. 또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해. 때로는 적들을 지지하고, 친구들의 길은 막아 버려. 자신을 먹여 주는 손은 물어뜯고, 때리는 손은 쓰다듬는단다. 인간은 그들의 역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기만 하면, 그들 모두의 진정한 내면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단다.」
- 1권
「이건 보통 것들보다 훨씬 복잡한 폭탄이야. 콩알만 한 온도 조절 장치가 하나 있고, 그 위에는 펌프 몇 개와 나로서는 처음 보는 어떤 괴상한 게 하나 붙어 있어.」
외인부대원의 이마에 땀방울이 반짝인다.
「미안해, 공작 부인. 나로서는 이 빌어먹을 물건을 어떻게 해체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무슨 바보 같은 짓이라도 했다가는 차라리 안 건드린 것보다 훨씬 고약한 일이 생길 것 같아.」
페트나는 침을 꿀꺽 삼킨다. 이제 손목시계는 <5초 후 사망 확률: 85%>를 표시한다.
카운트다운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8, 7, 6…
「뭐라도 좀 해봐!」 에스메랄다가 바들바들 떨면서 울부짖는다.
<5초 후 사망 확률: 91%>.
그들에게 1초 1초가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3, 2, 1….
타이머가 0을 가리켰을 때, 조그만 다이오드 전구 세 개가 동시에 켜지면서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펌프 하나가 작동을 시작하자, 단번에 세 개의 튜브로부터 녹색 액체가 빠져나와 하나의 관 속에서 뒤섞이면서 노즐 쪽으로 흘러간다.
카산드라의 손목시계는 이렇게 알린다. <5초 후 사망 확률: 94%>.
그녀는 두 눈을 감아 버린다.
-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