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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2911038
· 쪽수 : 400쪽
책 소개
목차
버마 시절
제국주의의 허상을 파헤친 비극적 리얼리즘
조지 오웰 연보
리뷰
책속에서
카우크타다는 마르코 폴로 시절부터 1910년까지 크게 바뀌지 않은 상 버마의 전형적인 도시로, 기차 종착역이 되어 선로가 놓이지 않았더라면 1세기 넘게 중세의 유럽 상태로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다. 1910년에 정부는 이 읍을 주도(州都)로 승격시켜 발전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다시 말해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탐욕스러운 소송인들로 들끓는 법원, 병원, 학교 그리고 영국인들이 지브롤터 해협과 홍콩 사이 도처에 만들어 놓았던 것과 같은 거대하고 항구적인 교도소 따위를 만든 것이다. 이곳의 인구는 2백여 명의 인도인들과 수십 명의 중국인들, 그리고 일곱 명의 유럽인들을 포함해 4천 명 정도였다. 또한 미국 침례교 선교사의 아들인 프랜시스와 로마 가톨릭 선교사의 아들인 새뮤얼 같은 유라시아 혼혈인들도 있었다. 20년 동안 시장 근처의 한 나무 아래에서 살면서 매일 아침 밥그릇을 들고 음식을 구걸하러 다니는 인도 탁발승을 제외하고는 호기심을 끄는 이야깃거리라곤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
「……영국인들과 이 나라와의 우정은 일종의 위조된 것이라 할 수 있소. 서로를 지독하게 미워하면서도 함께 모여 술을 마음껏 퍼마시며 음식을 바꾸어 먹고 친구인 체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오. 우리는 이런 것을 서로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다분히 정치적 필요성에서 나온 것이오. 물론 술은 이 기계를 더 잘 돌아가게 할 수 있소. 만약 술이 없다면 우린 모두 미쳐 버려 일주일에 한 명씩은 누군가의 손에 죽어 나갈 거요. 버마의 수준 높은 작가들이 다룰 한 가지 주제가 있소, 의사 선생. 바로 술이오. 술이야말로 제국을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의사는 머리를 흔들었다. 「정말이지 플로리 씨, 왜 그렇게 냉소적인지 모르겠어요. 당신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높은 재능과 인품을 지닌 영국 신사인 당신이 <버마의 애국자>에나 나올 법한 그런 선동적인 말을 하고 있다니!」
「선동적이라고 했소?」 플로리가 말했다. 「그렇지 않소. 나는 버마인들이 우리를 이 땅에서 쫓아내는 것은 원하지 않소. 그건 신이 허락하지 않을 거요!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왔소. 내가 반대하는 것은 단지 비열하게도 점령을 백인들의 의무로 포장하는 행태요. 푸카 사히브로 행세하는 것 말이오.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지만 않으면 우리 클럽에 있는 피비린내 풍기는 머저리들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요.」
플로리는 말을 하면 할수록 사태가 더 심각해지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서로 말없이 걸었다. 그는 그녀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그의 심정은 비참했다. 얼마나 멍청한 바보인가! 그는 그녀가 왜 화를 내는지 진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녀를 화나게 만든 것은 뻬 소녀의 행동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화를 내는 직접적인 이유가 되지 못했다. 이곳에 온 것 자체 냄새나는 원주민들과 어깨를 서로 부딪친다는 것?가 그녀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 그녀는 오늘 저녁까지만 해도 플로리가 꽤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침의 사건을 생각했다. 그가 그녀를 위해 맨손으로 물소와 대적한 것을 생각하니 분노가 차츰 수그러들었다. 그들이 클럽에 당도했을 때쯤 그녀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