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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역사학 > 역사학 일반
· ISBN : 9788946048256
· 쪽수 : 264쪽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지식과 기억이 만나는 구술 과정은 ‘말’로 매개된다. 구술사 연구 과정에서 종종 제기되는 문제 중 하나는 기억의 불안정성 문제와 신뢰성 문제다. 풀어 말하면 구술자들이 얼마나 정확하고 믿을 만한 기억을 구술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인간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좋아하므로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정직하게 구술할 수 있느냐, 또는 망각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지나간 일을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느냐, 상황에 따라서 기억의 내용이 바뀌는 것이 아니냐 하는 등의 물음과 연결된다.
역사의 균열은 기억의 균열이다. 사금파리처럼 조각들을 맞추면 하나의 완전한 사실이나 사건으로 재현할 수 있다. 또한 사금파리가 비추는 세계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다 의미를 재현할 수도 있다. 이러한 균열은 기억의 특성과 맞물려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구술사 연구를 착수하는 과정에 기억은 어떤 특성을 지니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억은 노화에 따라 쇠퇴하기 마련이지만,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젊다고 기억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늙었다고 기억이 바래지도 않는다. 구술이 의존하는 기억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할 때 비로소 구술사 연구의 진정성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 이래로 최근까지 일본 학풍의 영향으로 실증주의 학풍이 굳건히 뿌리내려져 있었다. 실증주의적 전통은 학계에서 선택과 배제의 논리로 작동하기도 했다. 특히 해방 이후 한국의 학풍은 실증주의에 뿌리를 둔 채, 학문적 권위주의 풍조와 독재, 권위주의적인 국가(정권) 중심적 성격이 강한 편이었다. 그러한 학문적 풍토에서 학문의 자유는 보장되기 어려웠고, 역사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도 보장되지 않았으며, 많은 기록자료도 훼손되거나 망실되었다. 심지어 국가 기록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과 같은 최고 지도자의 기록조차 사라졌다. 한편 그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협소한 학문적 보수주의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배척하는 경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