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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스페인/중남미소설
· ISBN : 9788946418394
· 쪽수 : 480쪽
책 소개
목차
1부………7
2부………257
리뷰
책속에서
나는 일을 비교적 빨리 배운 편이었다. 손놀림이 좋아서 바늘이나 천의 촉감에도 금방 익숙해졌다. 뿐만 아니라 치수라든지 체적, 옷의 앞면과 가슴 부위, 기장, 진동 둘레, 소맷부리, 바이어스 같은 것들도 쉽게 배웠다. 열여섯 살이 되면서 천을 구별하는 방법을 그리고 다음 해에는 천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과 그것을 앞으로 어디에, 어떻게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배웠다. 중국산 크레이프, 비단 모슬린, 조젯 천, 샹티이레이스 등등. 당시에는 일을 배우는 데 정신이 팔려 세월 가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가을에는 고급 모직 외투와 춘추복을 만들고, 봄에는 칸타브리아 지방의 라 콘차나 엘 사르디네로*에 휴가 갈 때 입을 수 있도록 가벼운 옷을 만들곤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는 열여덟 살 그리고 열아홉 살이 되었다. 이제는 옷 만들 때 가장 까다롭다는 부분까지도 혼자서 재단하고 마름질할 정도로 솜씨가 늘었다. 칼라와 옷깃을 붙이는 방법도 배웠고, 또 어디쯤에서 천을 접고 마무리를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옷 만드는 일에 한창 재미가 붙어서, 천 조각만 잡으면 몇 시간이고 쉬지 않고 일하곤 했다. 심지어는 마누엘라 부인과 엄마도 가끔 내 의견을 물어볼 정도로 나를 신뢰했다.
(14p, 《라 코스투라 1권 ‘그림자 여인 시라’》에서)
언젠가는 이그나시오의 따스한 품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삶도 결국엔 무너뜨리고야 말 거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피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내 결심은 그 무엇보다도 더 확고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던 결혼식과 공무원 시험 준비, 떨리는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쳐나가던 타자 연습 그리고 밤마다 다가올 황홀한 시간, 또 예쁜 아이들을 낳아 기르려던 소박한 꿈도 이젠 모두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일 뿐이다. 나는 그를 떠날 것이다. 아무리 모진 바람을 맞아도 내 결심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25p, 《라 코스투라 1권 ‘그림자 여인 시라’》에서)
칸델라리아는 아직 잠옷 차림이었던 내 몸 여기저기에 열아홉 개의 권총을 시트 천 쪼가리로 세게 묶었다. 혹시라도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띠 하나로 권총 한 자루씩만 묶었다. 먼저 천으로 권총을 두 번 묶은 뒤, 내 몸에 붙이고 다시 몸 둘레로 두어 번 돌려 감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의 양쪽 끝을 세게 묶었다.
“가엾은 것. 뼈밖에 안 남았구나. 살이 없으니 이젠 더 묶을 데도 없어.” 내 몸의 앞과 뒤를 다 묶은 뒤,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허벅지 쪽에 하면 되죠.” 내가 말했다. 고심 끝에 그녀는 내 의견대로 했다. 마침내 열아홉 자루의 권총이 내 몸 여기저기에 자리를 찾게 되었다. 가슴 아래, 늑골 위쪽, 아랫배와 어깨 그리고 옆구리와 팔, 허리둘레와 허벅지에 권총이 묶여 있었다. 마치 온몸을 흰 붕대로 칭칭 감은 미라 같은 꼴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그 아래로 무거운 무기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탓에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탓을 할 여유가 없었다. 이런 상태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빨리 연습을 해야만 했다.
(177p~178p, 《라 코스투라 1권 ‘그림자 여인 시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