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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유럽여행 > 유럽여행 에세이
· ISBN : 9788952761590
· 쪽수 : 384쪽
책 소개
목차
핀란드의 의미
굿바이, 닭들!
터키
남자들만의 도시
이스탄불의 하루
삼계탕 나이트
여행과 생활 사이
불가리아
유럽 여행 vs. 기차 여행
골동품 가이드북
루마니아
15년 만의 도미토리
가난하고, 부자 여행자
즐거운gay 동행자
두 번 간 도시
끌어안기hug에 대하여
폴란드
그 여자의 고향
크라쿠프에서 만나요
둘two의 의미
크라쿠프 기차역에서 생긴 일
카메라 없이 여행하기
무시무시한 호텔
작별할 때는 몸무게를 묻지 마세요
발트3국
변신
길치에서 치명적인 도시
한 도시만 고른다면
마지막 도시
핀란드
핀란드!
인상파 그녀
핀란드 여행의 동반자를 소개합니다
핀란드에서 운전하기
은밀한 마을들
세 미남자의 날
호숫가 오두막에서 하룻밤
한밤의 오페라
조용한 엔딩
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길고 험난했던 그 여행에서 지금도 잊지 못할 것은 지구 위를 진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 가로지르고, 북상하고, 남하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던 순간이었다.
그리운 쾌감이다. 생활 반경 20㎞를 벗어나지 않고 뱅글뱅글 맴도는 일상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광활한 공간적 경험, 또한 소중한 시간과 맞바꾼 성취감이기도 했다. 비행기를, 버스와 기차를, 배를, 말을, 당나귀를, 오토바이를, 자전거를, 그리고 두 발로 걷고 걸어 너른 땅을 가로질러 마침내 목적했던 바로 그 땅에 도달했다는 느낌, 그것이 좋았다. 여행다운 여행. 그때 그 여행은 정말 그랬다.
‘먼 곳에 가봐야겠다. 나라 하나가 아니라 여럿. 국가보다 큰 지역을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 정도로 많이. 그렇게 하고 싶어졌어. 아주 오랜만에.’
여행과 생활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전자는 후자에 이르러서는 사라지고 마는 낯섦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동력의 유무다.
이스탄불에서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에 매우 능숙해졌음을 깨달았다. 편안함이기도 하고 권태이기도 했다. 이런 느낌은 여러모로 지금과 정반대였던 대학 시절의 유럽 여행, 두 달 내내 생활이 아니라 그야말로 여행 그 자체였던 그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여행이 즐거움이 아니라 완수해야 하는 과업이고 전투이며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서툴고 불안하던 여름날의 첫 번째 여행.
그 시절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나는 빠르고 아주 능숙해졌다. 반복과 경험, 훈련이란 그런 것이다. 같은 것을 여러 번 해본 사람답게, 신속하고 유연해졌다.
예전과는 달리 이젠 어려운 일이 하나도 없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 것, 행인을 붙잡고 다짜고짜 길을 묻는 것, 물건값을 흥정하는 것, 뭘 하든 누워서 떡 먹기였다. 더 이상 부끄럼을 타지 않았고, 눈치는 어느새 9단이 됐으며 무엇보다도 이제는 사소한 일로 낭비할 시간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스무 살 적 유럽에는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나와 친구는 기차 자리 하나 예약하는 것조차 난감했다.
“가위 바위 보를 해 진 사람이 물어보는 걸로 하자.”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뭔가 묻는 것이 창피한 나머지 저런 짓까지 서슴지 않았다. 상상해 보라. 다 큰 대학생 두 명이 길 한복판에 마주 보고 서서 심각한 얼굴로 가위,바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