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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4438865
· 쪽수 : 264쪽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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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가 내 등을 선교관 벽 쪽으로 강하게 밀쳤다. 석재 벽에 코를 찧는 사태를 막기 위해 나는 반사적으로 두 팔을 뻗쳐 손바닥으로 벽을 짚었다. 승민 오빠가 내 손목을 낚아챘을 때부터 그가 하려는 행동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극적인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푸른 표정과 얼굴빛이 무섭기도 했고 또 그만큼 그가 슬프고 아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거나 제발 이러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행동에 동조한 것 역시 아니었다. 그저 눈을 질끈 내리감음으로써 나를 방치했을 뿐이다.
(……)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나는 승민 오빠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확히는 선교관 후미진 곳에서 그 일이 있었던 날, 그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 새벽녘에 목을 맸다.
그래서였을까, 눈을 감고 만족감으로 한껏 고양돼 있던 어느 순간 울컥했다. 온몸의 세포가 눈을 뜨는 것 같았다. 지금껏 벙어리로만 살아온 내 몸이 내 마음에 말을 거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야. 너무나 오랜만이지.
응, 나도 말할 수 있어. 네가 내 말을 들어 줄 귀를 아예 열지 않아서 지금껏 기나긴 침묵을 지켜 왔을 뿐이지.
그래, 마음이 소리를 내듯이 몸도 당연히 소리를 내.
그런데 희진아, 넌 왜 지금껏 그렇게도 몸을 혹사시키고 살았니? 종 부리듯 일만 시키고 가둬 둔 채 살았잖아?
나와의 대화는 낯설었다. 그렇게 몸이 마음보다 먼저 느껴진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이곳이 천연이고 야생이어서 자연의 원형질로 이뤄진 몸이 먼저 반응하는구나 싶었다. 낯설고 아주 색다른 느낌이자 경험이었다.
수면에 한쪽 뺨을 댄 나와 앤디의 눈빛이 어느 순간 마주쳤다. (……) 그의 까만 눈동자와 젖은 나의 눈이 설핏 흔들렸다. 그의 눈 속에서 작은 불꽃이 일었다. 그 빛을 읽은 순간 나는 눈을 지르감았다. 그의 두 손이 내 어깨와 뒷머리를 부드럽게 받쳐 안았다. 동시에 그의 젖은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맑고 촉촉했다. 이윽고 부드러운 혀가 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우리는 조금씩 퍼덕거리기 시작했고 수면 위로 커다란 물방울들을 튀겨 냈다. 나는 해조류같이 신선한 그의 혀를 혀끝으로 휘감았다. 두 팔로 그의 목과 뒷머리를 강하게 부둥켜안았다. 태양 빛과 물방울이 녹아 있는 그의 붉은 혀끝이 목을 타고 내려올 때 나는 불과 얼음의 촉수를 동시에 느꼈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각이 전신의 살갗에서 도톨도톨 일어나는 것 같았다. 사위가 물임에도, 내 안 어디엔가 단단히 재워진 마른 섶에 불꽃 하나가 던져져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
물과 불은 서로 상극이 아니었다. 우리 두 사람의 버둥거림으로 인해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물방울은 푸르고 투명한 불꽃이었다. 그의 입맞춤이 너무나 뜨거워 나는 사막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온몸을 퍼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