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4439046
· 쪽수 : 256쪽
책 소개
목차
여름의 막바지
목신들의 도서관
새와 해머 그리고 깡
헌책 파는 남자, 헌책 사는 여자
첫 대면
그가 떠나다
맞수
해머의 집
은하수의 빛무리를 따르는 쇠똥구리
호접지몽
손가락이 아프다
매몰
도서관의 역습
중닭의 비애
책과 노는 아이
to be continued
특별판에 부쳐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걍 때려, 새끼들아. 달게 맞을게.”
도범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각목 중 하나를 집어 들고 소리쳤다. 상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든 채 거들먹거리며 걸었다. 도범은 치러야 할 것은 빨리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간 겪은 일로 훤히 아는 바였다. 도범은 각목을 준비했다. 선고라도 내리듯 강북팸 앞에 각목 꾸러미를 내던졌다. 저수지 쪽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이 선듯했다. 밤산책을 하는 몇몇 사람들이 그들을 흘낏거렸지만 누구 하나 참견하지 않았다. 눈알만 되록되록 굴리는 강북팸에게 도범은 말없이 각목을 나누어주었다. 서울서 여기까지 온 것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살가운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들도 어느 정도 짐작하리라 생각했다. 어쩔 수 없었지만 인사도 없이 전학을 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의사표현이 된 거라는 걸, 알 만한 아이들은 다 안다. 손을 씻으려면 돌림빵은 각오해야 한다. 통과의례이니 저항하지 않고 장렬히 맞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세계의 미풍양속이다.
“넌, 뭘 믿고 그렇게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니? 하긴 교사와 공무원은 철밥통이지, 절대 부서지거나 빼앗길 일 없는. 우리같이 민간 자본에 기대 사는 사람들은 정글 속의 먹잇감이야. 잡아먹는 위치가 아니면 곧바로 잡아먹혀버리는. 나는 그런 신세는 되기 싫어. 우리 아버지를 봐. 난 아버지처럼은 절대 살지 않을 거야. IMF 때 잘린 이후 기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늙어버린 아버지를 보라고. 아버지가 한 게 뭐 있어, 세월을 보낸 것밖에. 난 그렇게 내 인생을 쫑내고 싶진 않아.”
“자긴, 누구보다 튼튼한 땅을 딛고 있으면서도 늘 불안해하잖아. 자기만 한 스펙? 대한민국에서 몇 프로나 될 것 같아? 자기야말로 상위 1프로에 속하는 사람 아니었어? 나머지 99프로는 어떡하라고, 아니 아직 기반은커녕 알바나 계약직으로 한 계절 낙엽처럼 떨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그래? 정해진 각본이라도 본 것처럼?”
“그애들이 지금 을매나 가렵겄냐. 너한테 투정 부리는 겨, 가렵다고 크느라고 가려워 죽겄다고 투정부리는데 아무도 안 받아주고, 안 알아주고 가려워서 제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몸부림치는 놈들한티, 대체 왜 그러냐고 면박이나 주고, 꼼짝없이 가둬놓기만 하는데 어떻게 전딜 수 있겄냐.”
수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머니 말에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는 못해도 네가 어디가 가렵구나, 그래서 가렵구나 알어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녀? 너라도 알아봐줘야 하는 거 아녀? 말 드세빠지게 안 듣는 놈일수록 가려운 데가 엄청 많은 겨. 말 안 듣는 놈 있으면 아, 저놈이 어디가 몹시 가려워서 저러는 모양인가 부다 하면 못 봐줄 거도 없는 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