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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54602549
· 쪽수 : 141쪽
책 소개
목차
서시
나의 조각
나는 모른다
비의
광대
저녁식사중의 확인
입신
배화
구애
환멸
성년의 봄
이립
출발
바람
첫 수업
불꽃
부랑
포옹
서명
연옥 1970
빛의 해안
물방울
상실
밤의 서울
초조
여행
아우슈비츠
추수
회복
잔인한 꿈
벽
깊은 꿈
끝장
노예
벽
녹슨 문
소생
별부
새벽
역전
친구에게
떠나는 이에게
예감
영등포 길
다리
소문
사월 십구일
노래
여름
외침
마을
초판 해설 : 최민의 시세계ㅡ출발과 동행 / 유종호
개정판 해설 : 열린 절망의 고전주의와 닫힌 희망의 낭만주의
ㅡ최민 시집 <상실> 복간에 부쳐 / 김정환
저자소개
책속에서
상실
언제나 빗물이 새는 내 두개골이 요란한 네
두 눈빛을 만나 저주의 신음소리를 내고
놀란 처녀의 골반을 뒤쫓아 나는 남쪽으로
내려갔다 항구까지 따라 내려갔다 미친듯이
서리내린 논뚝길들이 새벽녘으로 도망쳐 달아났다
황량한 사태 나는 황량한 비탈들을 스쳐 지나
거푸 식민지의 터널들을 뚫고 지나오며
네 국적없는 얼굴마저 잃어버렸다
낯익은 부두가 아직 먼지 가운데 살아 있다
비린내 속에서도 네 목소리를 찾아 헤매는 나
언 기름처럼 떠 있는 슬픔의 바다 노을
속에 잠겨 잠자고 있는 잿빛 기선들 크레인들
너는 없었다 만나본 것은 모두 시체들이었다
살기마저 사라져버린 몸뚱이들 더러
번쩍거리는 건 먼지까지도 불타는 먼 나라로
죽이러 가서 반쯤 죽어서 돌아온 병정들의 눈알
소금바람에 젖어 누운 바락크 앞 쓰레기를 모아
태우고 있는 날품팔이 인생들 빨갛게 초겨울을
구멍뚫는 모닥불 너도 그 불을 쪼이고 있는가
실연했다고 나는 소주를 퍼 마셨다
두들겨 맞았다 사랑의 못에 걸려 보이지 않던
깃발들이 실밥을 흩날리며 찢어졌다
두터운 잠이 허어옇게 비곗살을 내보이며
흐터졌다 이 얻어터져 피맺힌 상판대기처럼
트릿한 의혹 되돌아오며 나는
이 흐리멍덩한 의혹을 잡아 찢는다
말못하는 내 주둥이를 잡아 찢는다
혓뿌리채 튀어나와 비명지를 때까지
살려줘 네겐 죄가 없다 서울역으로
수채구멍으로 숨어 들어가는 이등객차 속에 내가
앉아 있다 떠나버릴 수도 있었는데 굳어버려
네가 없어져버린 부둣가에 녹슨 닻으로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