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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4605878
· 쪽수 : 175쪽
책 소개
목차
시계탑
11세
13세
15세
17세
19세
작가의 말
즐거운 장난
강신무
메리 크리스마스
내 이름 말이야,
외발자전거
박제
작고 하얀 맨발
깊고 달콤한 졸음을
파꽃
범람주의보
팔월
해설_커브 없는 직구의 매력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나는 가만히 눈을 떴다. 은빛 꼬리가 얼굴 위로 서늘한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진다.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키려 해보지만 내 몸은 나선형의 물결만을 일으킬 뿐이다. 토끼 가죽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민용을 불러본다. 민용은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더니 팔을 걷어붙인다. 이내 쇠냄새 나는 뜰채가 수족관 안으로 들어왔다. 몇 마리의 파라니아들이 수족관 안을 정신없이 휘젓기 시작한다. 뜰채는 어렵지 않게 피라니아 한 마리를 망 안에 담아 유유히 물 위로 사라진다. 갑자기 심한 갈증이 몰려온다. 온몸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어디선가 희미한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선택되고 싶니?
-선택되고 싶어.
-어째서?
-내 꼬리에 난 상처 좀 봐. 맛없는 먹이 몇 알을 갖고 벌이는 이 좁은 수족관 안에서의 한심한 싸무이 지겨워. - <즐거운 장난> 중에서
교복 조기와 치마를 벗는다.
흰 블라우스 아래 바지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다. 요즘 사자 갈기 콘셉트로 기르고 있는 머리카락만 질끈 동여묶으면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준비 완료다. 나는 일주일 전부터 커피와 과일주스, 토스트 등을 팔고 있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커피숍의 사장은 삼십대 중반의 여자인데, 가게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보다 먼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고3 언니가 마치 사장처럼 거들먹거린다. 숱도 없는 눈썹을 쥐꼬리처럼 얇게 다듬고 다녀서, 나는 그 언니를 쥐꼬리라고 부른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유는 최신형 휴대폰을 사기 위해서다. 꽁꽁 언 겨울 호수 위에 반사되는 달빛처럼 눈부신 은빛 케이스, 지문을 지워버릴 듯 부드럽게 눌리는 키패드. 게다가 인도의 요가 장인처럼 몸체가 사방으로 젖혀지는, 전자기기답지 않게 매혹적인 유연성이란. - <시계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