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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동유럽소설
· ISBN : 9788954610735
· 쪽수 : 256쪽
책 소개
목차
조사弔詞
슈바벤 목욕
우리 가족
저지대
썩은 배
숨 막히는 탱고
창문
성냥갑을 든 남자
마을 연대기
독일 가르마와 독일 콧수염
장거리 버스
어머니, 아버지, 아이,
그 당시 5월에는
거리미화원
의견
잉게
불치만 씨
검은 공원
일하는 날
리뷰
책속에서
어머니가 방들을 전부 깨끗이 치웠다.
시신이 안치되어 있던 방에는 이제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도살대였다. 그 위에 흐트러진 하얀 꽃다발을 꽂아둔 꽃병과 아무것도 담기지 않는 흰 접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살이 비치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커다란 칼을 들었다. 어머니는 거울 앞으로 다가가, 탐스럽게 땋아내린 은발을 그 커다란 칼로 잘랐다. 머리채를 양손에 받쳐들고 도살대로 갔다. 머리채 한쪽 끝을 접시에 올렸다.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검은 옷을 입을 거야,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가 머리채 한쪽 끝에 불을 붙였다. 머리채는 도살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닿았다. 머리채가 화승처럼 타들어갔다. 불길이 너울거리며 활활 타올랐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소리 없이 밤이 되는지 나는 결코 알지 못했다. 저녁마다 여름이 마을 한복판으로 가라앉았다. 사방이 뒤주 속처럼 칠흑같이 어두웠고 죽은 듯이 고요했다.
한낮이었고, 죽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왜 갑자기 죽었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눈물을 철철 흘릴 것이다. 그리고 온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죽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여름이 내게 무성한 풀밭의 진한 꽃향기 세계를 퍼부었다. 야생 아르메리아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나는 강을 따라 걸으며 팔에 물을 끼얹었다. 살갗에서 풀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나는 아름다운 늪지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