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4616553
· 쪽수 : 292쪽
책 소개
목차
너의 마을과 지루하지 않은 꿈
정류장
나무의 죽음
신의 아이들
갈라파고스
나는 『부티의 천 년』을 이렇게 쓸 것이다
자정의 픽션
열한시 방향으로 곧게 뻗은 구 미터가량의 파란 점선
해설 박형서 프로젝트 _권혁웅(시인·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새벽이 다 되어 돌아온 성범수와 나는 전날보다 심하게 싸웠다. 성범수의 손톱이 내 목덜미에 길쭉한 상처를 냈다. 피를 보고 흥분한 나는 온도조절판이 망가진 철제 다리미를 휘둘렀다. 그가 몸을 웅크리자, 한 손에 다리미를 든 채로 청바지를 벗겼다. 털이 수북한 아랫도리가 드러났다. 성범수가 비명을 질렀다. 이 무슨 망측한 짓이냐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건 원래 내 옷이었다. 고양이가 아니라 내가 입어야 할 옷이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반항할라 치면 다리미의 뾰족한 부분으로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러는 나 자신의 행동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결코 그렇게 좆같은 나쁜 인간이 아니었다. 성범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때리지 않고 아무와도 다투지 않던 사람이었다. 성범수가 나를 괴물로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자괴감에 기운이 쭉 빠졌다. 다리미를 내리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후다닥 일어나더니 창문 틈으로 잽싸게 도망쳤다. 저 너머의 어둠 속에서 원망에 가득 찬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약속했었다, 우리가 함께 결정했었다!> (「갈라파고스」, 131쪽)
“어떻게 해야 무기력하지 않게 살 수가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회련의 말이었다. “언젠가는 죽을 목숨으로 돌아가면 되지요.”
“하지만 어떻게요? 우리는 불사의 몸이잖아요. 아무리 해도 죽을 수가 없어요.”
회련은 가만히 웃으며 뷘팅의 눈을 응시했다.
“그게 바로 무력감에 젖어 있다는 증거랍니다. 우리의 목숨은 특별하게 보호받고 있지요. 그리고 그 보호를 거절할 생각도 없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뷘팅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고 휘청거렸다. 눈을 껌뻑이며 땅을 볼 때 회련의 말이 이어졌다.
“네, 그처럼 간단합니다. 이 상태라면 우리는 영원히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의 고통 속에서 남을 원망하며 지낼 수밖에 없지요. 그런 너저분한 매순간을 영원히 사는 겁니다. 당신에게도 끝나지 않길 바랐던 시간이란 게 있지 않았나요? 하지만 금세 끝나버렸을 테지요. 왜냐하면 삶의 길이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진짜’는 아주 짧거든요. 그건 금방 끝나버리기 때문에, 그리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진짜’랍니다.”(나는 『부티의 천 년』을 이렇게 쓸 것이다, 1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