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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시론
· ISBN : 9788954620024
· 쪽수 : 688쪽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너무 많은 하늘 아래서 - 좋은 시에 대하여
1부/ 시에게 묻다
상황이란 무엇인가? - 시적 소통과 시적 상황
시는 어떻게 타자를 사유할 수 있는가? - 시와 공동체
실재는 어떻게 출현하는가? - 시와 내적 실재
목소리는 어떻게 출현하는가?
이 글들을 무어라 부를까? - 제4의 문학을 위하여
미래파 2 - 2007년, 젊은 시인들을 위한 변론
2부/ 한국시, 가지 않은 길
백석은 죽기 전까지 시를 썼다
박인환은 1968년에 죽었다
기형도는 두 사람이었다
무의미시는 무의미한 시가 아니다
날이미지시는 날이미지로 쓴 시가 아니다
3부/ 자동기계들의 시
백설기(白雪期)와 일곱 난쟁이 - 2011년, 젊은 시인들
프라이팬, 해파리, 탄젠트 그리고 사랑의 기술 - 젊은 시인들에게서 배우는 연애의 법칙
자동기계들의 시 - 시와 유물론 1
스피노자의 칠판 - 김민정의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시와 유물론 2
앨리스의 사생활 - 황성희의 <앨리스네 집>: 시와 유물론 3
떠올라(fly), 사라지다(out) - 여태천의 <스윙>: 시와 유물론 4
보스(Bosch)의 정원에서, 그대와…… - 강기원의 <바다로 가득 찬 책>: 시와 유물론 5
4부/ 비림(碑林)에서 1
사랑의 알레고리와 팬케이크 우주론 - 김혜순 시의 우주
나는 머나먼 사막으로 떠났다 - 남진우 시의 지형학
죽음과 형식 - 송재학의 <내간체를 얻다>
슬하의 시 - 문인수의 <적막 소리>
역(易)과 시(詩) - 장석주의 <오랫동안>
변경에서 - 최승자와 장석주의 시
부사들의 존재론 - 정끝별의 <와락>
부정의 대위법 - 하종오의 <지옥처럼 낯선>
5부/ 비림(碑林)에서 2
멜랑콜리 펜타곤 - 진은영의 <우리는 매일매일>
센티멘털 트라이앵글 - 하재연의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이브의 존재론 - 이제니의 <아마도 아프리카>
‘몽’자류 시의 기원과 뫼비우스 우주 - 박순원의 <주먹이 운다>
나무로 혹은 나, 무로 돌아가기 - 장만호의 <무서운 속도>
지구소년에 관한 네 가지 이야기 - 김산의 <키키>
황병승 시에 대한 세 가지 단상
6부/ 그림자에 관한 고백
너무 먼 이쪽 - 마종기의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정신주의의 완성을 위하여 - 최동호의 <불꽃 비단벌레>
천진의 시학 - 오탁번의 시 세계
비평의 N차원 - 황현산의 비평 세계
에필로그: 시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우리는 시를 쓸 때 이곳저곳에서 솟아나는 타자들의 출몰을 목격한다. 우연하고 무한하고 강제적인 어떤 이미지, 변용태들, 불투명한 구절들, 소리-뜻들이 돌출하며 그것들이 비선형적으로 결합하여 목소리(주체)를 갖춰나간다. 따라서 주체는 타자들의 심연에 붙여진 이름이다. 시적 자아는 가상일 뿐이며, 그 자체가 유령의 처소다. 시는 이질성의 놀이터이자 전쟁터다. 바로 여기서 진리가 수수께끼의 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지평을 ‘상황’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은 구체화, 개체화된 변용태들의 집합이며 주체와 타자가 만나는 감각의 현장, 둘이 교섭하는 관계의 표현, 타자들의 환대를 실천하는 비유의 경연장이다. 상황은 시를 동일자의 지옥에서 구제해준다. 낱낱의 시는 타자들의 흔적과 관계와 교섭의 기록으로서 각각의 상황을 품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시는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더 강력하고 집요하게 공동체의 문제를 사유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는 타자의 것이다. 우리는 시에서 우리 자신의 거울상을 보는 게 아니라 타자들의 출몰을 본다.
_47쪽, 「시는 어떻게 타자를 사유할 수 있는가?」 중에서
시의 언어는 시인의 것인가? 낭만주의자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것은 시인의 소유물이며, 나아가 그의 영혼의 녹취록이다. 그것은 어떤 불멸성의 표현이다. 관념론자들도 그렇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의미이지 언어가 아니다.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래서 투명할수록 좋다. 나의 말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언어가 좋은 언어다. 그것은 의미를 담는 그릇이다. 그러나 유물론자들에게는 언어 역시 물질의 하나다. 언어라는 질료가 있어서 의미라는 부산물을 낳을 뿐이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시는 후자에 속한다.(……)
시가 투명했다면, 언어와 그것의 지시체 간에는 어떤 간극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시체가 둘로 분열한다는 것을 안다. 언어가 말한 ‘지시적’인 대상과 ‘실재’하는 대상, 이렇게 둘로. 그것은 언어가 이미 질료이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언어는 시각영상(이미지)과 청각영상(말소리)을 가진 물리적인 실체다. 정리하자면, 세 개의 질료가 있다. 언어≠언어의 지시체≠사물. 이 세 자리에서 모두 의미가 생겨난다. 시는 그 점에서 ‘잘못 말하기’, 혹은 ‘한 번으로 여러 번 말하기’다.
_267~268쪽, 「자동기계들의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