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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54624244
· 쪽수 : 520쪽
책 소개
목차
1부 1920~1938
당신은 대체 정체가 뭡니까? 11
사랑에 끌리고 사랑에 빠지다 25
케스트너 씨, 영혼을 위로하는 작가 33
문자에 대한 경외감 43
실패로 끝난 인종학 수업 62
한꺼번에 찾아온 사랑 이야기 74
가장 아름다운 도피처, 연극 94
행복이 되어준 고통 116
옆방으로 들어가는 문 129
보이지 않는 짐을 들고 136
2부 1938~1944
시와 전쟁 147
사냥의 향연 160
고인과 그의 딸 170
‘전염병 통제구역’ 그리고 게토 180
어느 미치광이의 푸념 188
음악이 사랑의 양식이라면 196
빈 왈츠에 실린 사형선고 209
지식인, 순교자, 영웅 219
눈부시게 말쑥한 채찍 227
질서, 위생, 규율 236
볼렉에게 들려준 이야기들 248
3부 1944~1958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쏜 총 267
라이히에서 라니츠키로 283
브레히트, 제거스, 후헬, 그 외의 사람들 300
요제프 K., 스탈린 인용, 하인리히 뵐 315
독일 연구여행 332
무성한 콧수염의 젊은 남자 342
4부 1958~1973
독일인으로 인정받다 355
47그룹과 퍼스트레이디 363
발터 옌스 혹은 우정 376
문학, 내 삶의 기쁨 384
카네티, 아도르노, 베른하르트, 그 외의 사람들 394
풀버뮐레와 계산기 413
5부 1973~1999
검은 옷을 입은 손님 429
시에 작은 길을 내주자 435
천재는 일하는 시간에만 천재다 447
마법사 가족 454
막스 프리슈 혹은 유럽 문학의 화신 465
예후디 메뉴인과 <문학 4중주> 473
요하임 페스트, 마르틴 발저 그리고 ‘해금’ 485
꿈이야 496
감사의 말 498
옮긴이의 말 500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연보 504
인명 색인 509
리뷰
책속에서
내가 특별히 즐겨 추억하는 반 아이가 있다. 인정이 있는 아이였고 유대인들을 대하는 태도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어느덧 의사가 되어 있던 그가 들려주길, 1940년 베를린의 슈테틴 역 근처에서 경찰의 감시하에 끌려가던 유대인들 틈에서 옛 동급생 T를 보았다는 것이다. 몰골이 초췌했다고 했다. “그때 생각했지. 나한테 그런 비참한 모습을 보이는 게 그 아이로서는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을 거라고. 나도 마음이 불편해져서 얼른 외면해버렸어.” 그래, 그의 말이 맞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 아이처럼 우리를 외면했다.
1937년 그때만 해도 나는 토마스 만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국제사회에서 독일 작가로서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큰 역할을 해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누가 봐도 확실한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가 되었다. 20세기의 독일을 대표하는 두 사람의 이름을 들라고 한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할 것이다. 독일, 그건 내 눈에 아돌프 히틀러와 토마스 만이다. 두 이름은 예나 지금이나 독일의 양면, 두 가지 가능성을 상징한다. 만일 독일이 이 두 가능성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망각하거나 배제하려고 한다면 그때는 치명적인 결과가 뒤따를 것이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천천히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두 명의 유대인 청소년은 그때 ‘제3제국’에서 절망적이고 가망 없는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어. 그 미래를 우리는 단 한순간도 진지하게 신뢰하지 않았지. 그때 유대인이 어떻게 배우가 되고 어떻게 평론가가 될 수 있었겠어? 하지만 우리는 그 호사를 누렸어. 연극과 문학이 있는 삶을 꿈꿨잖아. 그때 우리를 이어준 것은 아마 우리의 꿈이었을 거야.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그 꿈이 정말 실현됐어. 우리 민족이 학살되는 와중에도 우리는 무사했어. 맞아 죽지도, 살해되지도, 전멸되지도, 가스실에서 죽지도 않았지. 우리는 그럴 만한 이유도 없이 살아남았어. 그건 순전히 우연이야. 우린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아비규환에서 선택된 아이들이지. 우리는 표식을 단 사람들이야. 마지막 죽는 날까지 우리는 그 표식을 지니고 살아가겠지. 넌 그거 알고 있니?” “그래,” 내가 말했다. “잘 알고 있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