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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54624831
· 쪽수 : 340쪽
책 소개
목차
염소를 모는 여자 _007
안마당이 있는 가겟집 풍경 _077
봄 피안彼岸 _113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_135
남자의 기원起源 _171
만월滿月_197 (*초판 출간시 제목은 ‘낯선 운명’)
새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_225
사막의 달 _253
해설|황현산(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운명 만들기 또는 만나기 _321
작가의 말 _335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언제까지 벼랑 끝에 배를 붙이고 심연을 내려다보고 있을 수는 없다. 나아가기 위해서는 끊긴 길 앞에서 두 눈을 감고, 두 귀도 닫고 자신의 본질을 향해 어느 순간 훌쩍 뛰어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뛰어내려본 사람은 알게 될 것이다.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심연 속에 현실 보다, 현실의 현실보다도 더 강한 구름의 다리가 있다는 것을. 자신의 숲을 향해 가는 구름처럼 가벼운 구름의 다리…… _「염소를 모는 여자」
문계장은 피아노를 친 후에 꼭 손을 씻고 내게도 양은대야에 물을 담아주었다. 나는 문계장이 가랑파 같은 희고 연한 손을 씻을 때면 밤마다 동전을 세어 묶다가 잠드는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는 으레 동전을 쥔 채로 졸다가 다 못 센 동전들을 장롱 밑에 밀어넣고 잠들어버리곤 했다. _「안마당이 있는 가겟집 풍경」
나는 다시 한번 눈으로 꽃을 센다. 내 인생에 이제 다시는, 나이 숫자만큼의 꽃을 받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여자에게 흔히 주어지는 부당한 암시의 일종으로 느껴지며 동시에 본질적으로는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기 때문이다. 서른 이후 나는 나이를 휘저어버렸다. 나는 아주 늙은 할머니일지도 모르고 작은 여자아이일지도 모르며 아직 처녀 아이일 수도 있다. _「봄 피안彼岸」
언제까지 나는 떠돌 수 있을까, 내가 나를 마주치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내려는 것처럼 허무한 음모. 집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모르는 곳으로만 떠나갈 수가 있을까…… _「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나는 갓 서른을 넘겼고,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고 자율적이다. 나는 세속의 금들을 넘어서는 것에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서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죄가 되는가 안 되는가는 오직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고, 때로 죄책감 따윈 완전히 사양할 수도 있다. _「남자의 기원起源」
그해 뒤뜰에는 꽃도 피지 않았다. 저절로 터져 흩어졌다가 저절로 싹틔우고, 출석 부르듯 순서대로 피어나던 큰언니의 뒤뜨락은 묵정밭처럼 잠들어 있었다.
“미물이 먼저 아는 게야…… 한스런 마음에는 꽃이 피지 않지. 꽃씨들이 다 떠내려가버렸는갑다.”
엄마가 혼잣말을 했다. _「만월滿月」
“사랑해.”
남편이 연기를 훅 뿜으며 말한다.
“나도.”
나는 천장을 향해 반듯하게 누우며 말한다. 쓸쓸하다. 이 많은 사랑으로 무엇을 하나…… 소금밭에 생명이 자라지 않듯, 이 많은 사랑이 불모의 황무지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기이하다. _「새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난 말이야, 사랑이 문제야. 정말이지 잘사는 건 안 부러워. 한번 그렇게 살아봤거든.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이야. 세상일은 좀 거짓말 같애. 내가 이야기를 해도 그때 일이 거짓말 같거든. 지금 이러고 사는 것도 거짓말 같고…… 젊었을 때처럼 꼭 필요한 것만 등에 메고 캠핑을 떠난 기분이야. 아주 작은 텐트 속에서 하루하루 떠날 일정을 미루고 사는 연인들처럼…… 물론 그래도 마음이 아픈 데는 있지. 비 오는 날 텐트 속에 갇혀 지내는 것처럼, 마음 아프고 적막한 데도 있어. _「사막의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