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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56251745
· 쪽수 : 232쪽
책 소개
목차
내 어머니의 연대기
꽃나무 아래에서 9
달빛 55
설면 125
묘지와 새우감자 193
해설 215
역자 후기 229
책속에서
그날 밤 이층 방의 침상에 몸을 눕히고, 어머니가 눈이 내리는 밤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오늘 밤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어제도 그제도 눈 내리는 소리를 듣고 귀 기울이면서 밤을 보내고 또 잠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한때 격렬하게 어머니를 재촉했던 본능의 푸른 불꽃도 꺼졌다. 눈이 내리는 밤 속에서 살고 있지만 드라마를 구성하고 스스로 출연하기에는 심신이 모두 쇠약해져 있다. 교만한 소녀로 꾸며진 어린 날의 어머니로 돌아갔는지도 모르지만 이미 무대 조명은 꺼지고 두 아들도 두 딸도 잃어버렸다. 남매들과 친척들, 지인들, 친했던 이들도 모우 잃어버렸다. 잃은 것이 아니라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지금 어렸을 적 자라난 집에 혼자 살고 있다. 매일 밤 어머니 주위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지금은 잊어버린 오래전 젊은 날, 그 마음에 새겨진 하얀 눈의 표면만을 지켜보고 있다. (『내 어머니의 연대기』 삼부작 중 「설면」, 186쪽)
-아마도 모든 독자가 무의식중에 숨을 멈출 정도로 감동에 빨려 들어갈 만한 부분을 인용해보겠다. 「달빛」의 마지막 환상이다.
나는 스물셋의 젊은 어머니가 아기인 나를 찾아 헤매며 심야의 달빛이 쏟아지는 길을 걷는 그림을 눈 속에 그리고 있었다. 내 눈 속에는 또 하나의 그림이 있었다. 그것은 환갑을 넘은 내가 여든다섯 살의 늙은 어머니를 찾아 같은 길을 걷는 그림이었다. 한 장은 차가운 무언가에 젖어서 빛나고, 다른 한 장에는 무언가 황량함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장의 그림은 곧 내 눈꺼풀 위에서 겹쳐 한 장이 되었다. 거기에는 아기인 나도 있었고 스물세 살의 어머니도 있었다. 예순세 살의 나도 있고 여든다섯 살의 노파 얼굴을 한 어머니도 있었다. 메이지 40년(1907)과 쇼와 44년(1969)이 겹치고 그 사이의 60년 세월이 달빛 속으로 수렴되어 확산되고 있었다. 차가움도 황량함도 하나가 되어 날카로운 달빛이 모두를 꿰뚫고 있다.(해설, 2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