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베스크 : 사계

바람이 분다. 저기, 은행나무 한 그루가 노랗게 서 있다. 나무 주변이 노랗게 샛노랗게 떠오른다. 저 色들, 진짜일까. 實? 虛? 實? 虛? 바람이 분다. 여기, 나는 내가 아닌 것만 같다. 넋 놓은 채, 나, 헛된 나, 의심스런 나. [7]

바람 불면 노랑으로 타는 듯, 노랑으로 타서 기화하는 듯, 기화하여 절정에 이르는 듯, 절정에 이르러 땅의 혼이 드러나는 듯. 은행나무, 활활, 혼 붙은 공간. [8]

겨울, 내 가슴은 나비의 무덤. 色과 모양들의 무덤. 겨울, 내 가슴은 무덤이 된다. 주름진 들판을 걸으면, 이 겨울, 色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