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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7483053
· 쪽수 : 256쪽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발문
나마스떼
빨간자전거
명자 씨
시립도서관의 이상한 여자들
미인
용호
나의 장례식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는 도대체 무얼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는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내가 있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까? 아니면 본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그녀와 결혼해서 인도인으로 살까? 그동안 그는 나에게 약혼녀에 대해 왜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을까? 그와 약혼을 했다는 그녀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름은 뭘까? 어떤 여자일까? 그럼 나는? 나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를 좋아하기나 하는 건지 여러 가지 의문들이 한꺼번에 머리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서 그의 약혼녀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며칠을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다른 어떤 것도 이 문제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궁금해 하면서도 며칠 동안 그에게 오는 전화도 매번 받지 않았고 먼저 전화를 하지도 않았다.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이 너무나 두려워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마스떼」 중에서>
진수는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지난밤에도 동기의 꿈을 꾸지 않았다. 이런 날이 진수에게 몇 번이나 있었던가? 진수는 어제 사다 둔 진딧물 약을 타서 자신의 집 둘레 장미넝쿨에 쳤다. 그리고 다시 약통을 채우고 피아노 학원 앞으로 갔다. 진수는 피아노 학원 정문에 아치형으로 피어 있는 장미넝쿨에 약을 쳤다. 다시 담장 쪽으로 옮겨 약을 치려는데 그녀가 신문을 가지러 현관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담장 밖에서 약을 치고 있는 진수를 보더니 정원을 지나 담장 쪽으로 나왔다.
혜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제자리에서
“주인 허락도 없이 뭐하시는 거예요?”
“뭐라고요? 이거 약치는 기계 소리 때문에 안 들려요”
진수가 일부러 큰 목소리로 되물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냐고요?”
진수는 손가락으로 귀를 가리키며 들리지 않는 척했다.
“좀 나와서 말씀하세요. 뭐라는지…”
진수는 들리지 않는 척 혜연을 밖으로 나오게 했다.
혜연이 답답한지 대문을 열고 진수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혜연이 나오는 걸 보며 살짝 웃다가 혜연이 다가오자 태연하게 계속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제 허락도 없이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아 이거요? 어제 보니 장미넝쿨에 진딧물이 좀 보이는 것 같아 우리 집에 약을 치고 남았기에 그냥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쳐드리는 거예요. 이웃사촌이라는 게 이런 거 아닙니까?”
“저 이러시는 거 바라지 않아요. 그만하시고 돌아가세요. 도와주신 건 고맙지만, 앞으로는 이러지 마세요.”
“벌써 다 했는걸요.”
“다음부터는 저한테 신경 꺼주세요.”
혜연이 쌩하고 대문을 닫고 들어가더니 다시 나오지 않았다. 진수는 혜연의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저 약을 뿌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빨간자전거」 중에서>
친정엄마가 다녀가던 날 몇 시간을 떨었는지 방으로 들어와서도 몸은 오래도록 따뜻해지지 않았다. 명자 씨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부엌으로 가더니 연탄보일러 화덕의 구멍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러더니 친정엄마가 사 오신 미역을 빨아 미역국을 끓였다. 나는 방이 어두워지도록 아기 옆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일어나지 않았다. 잠은 오지 않았고 눈물은 삼킬 수 없었다. 명자 씨가 뽀얗게 잘 달여진 미역국과 갓 지은 밥을 작은 상에 차려 들어왔다. 나를 일으키더니 말없이 내 손에 수저를 쥐어주었다. 명자 씨의 눈은 이미 퉁퉁 부어 있었다. 나는 입천장이 데이는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뜨거운 미역국을 먹었다.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구박하던 명자 씨가 그 순간만큼은 친정엄마 같았다. 급하게 밥을 먹는 나를 한참 지켜보던 명자 씨가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니 이래도 집에 안 갈래?”
명자 씨가 울먹이며 내게 물었다.
“… 어머님…”
“이제 그만 니 집으로 돌아가거라. 여긴 네가 살 곳이 아니다. 아기는 내가 잘 키워줄게.”
“안돼요. 잘못했어요. 어머님. 제가 더 잘할게요. 싫어요, 안 갈래요.”
본능적으로 아기를 감싸 안았다.
“아이고 이 미련한 인간아…”
명자 씨가 아기를 감싸고 있는 내 등짝을 몇 차례 세게 때렸다. 우리는 한동안 소리 내어 서럽게 울었다. <「명자 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