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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국내 BL
· ISBN : 9788960520424
· 쪽수 : 448쪽
책 소개
목차
2장 109
3장 202
4장 255
5장 329
6장 365
저자소개
책속에서
(중략)
“몰이꾼 중에 역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니… 어찌하면 좋겠소?”
“우선 여기서 빠져나가야지. 몰이꾼 중에 배신자가 있다면 따라온 병사도 믿을 수 없어. 하지만 몰이꾼은 사람을 모느라 넓게 퍼져 있고, 병사들은 몰아온 사슴을 잡기 위해 뭉쳐 있지. 몰이꾼을 뚫고 빠져나가는 편이 낫겠어.”
“모든 몰이꾼이 역적에 가담한 것은 아니지 않겠소?”
“죽이진 않을게. 조용히 따라오기만 해.”
“아,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말발굽을 싸두는 편이 좋을 것 같구료.”
현성은 말에서 내려 값진 비단전포를 아낌없이 찢어 그것으로 자신의 말과 게세르의 말발굽을 쌌다. 초원에서 말을 달린다면 풀 헤치는 소리밖에 나지 않지만, 중원의 땅은 단단하고 바윗돌이나 자갈도 있다. 소그드는 현성의 수완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 황태자 전하! …켁!”
“소그드 공?!”
“누가 우리 편인지 모르잖아. 나중에 사과할 테니 일 수습될 때까지만 참아달라고.”
황태자를 발견하고 달려온 몰이꾼이 소그드의 칼집에 맞아 나자빠졌다. 기겁하는 현성을 이끌고 소그드는 계속 달렸다. 하지만….
휙. 화살이 날아왔다. 쳐내는 것은 소그드에게는 수월하였다. 한 발일 때의 이야기지만.
“…역시, 본격적이군.”
“소그드 공…!”
어떤 소리도 신호도 없이 검은 옷으로 똑같이 몸을 감싼 기수들이 두 사람을 둘러쌌다. 얼굴을 가린 복면 위의 눈동자는 어떠한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았다.
“무례하구나! 어느 안전이라고 행패인가!”
“기세는 좋은데 말이지, 그런 말에 겁먹을 것 같으면 대역 같은 거 안 저지른다고?”
“공은 어째서 그렇게 침착한가?!”
“침착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자, 내가 신호하면 죽어라 뛰어. 이놈들은 잡아두겠지만 그다음까지 돌봐줄 순 없어.”
“소그드 공. 그대 설마….”
“뭐 이상한 거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소그드는 번갯불같이 화살을 쏘아붙였다. 그러나 사슴이나 여느 병사들과 달리, 검은 기수들은 화살을 후려쳐서 떨어내거나 아예 몸으로 받아 내었다. 튕긴 화살이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돈다.
“제법… 껍데기가 딱딱하네!”
그사이에 소그드는 질풍처럼 뛰어들어 칼을 내질렀다. 하나를 베어 넘기고, 다른 한 명이 막아내자 안장 위로 뛰어올라 발로 걷어찼다. 기수가 땅에 떨어지자 게세르가 말발굽으로 짓밟았다. 실로 인마일체의 무용.
“소그드 공!”
“내 이름 부를 시간에 제대로 된 병사들을 불러오라고!”
“아, 알겠소! 무운을…!”
현성은 이를 악물고 준마의 배를 걷어찼다. 검은 기수들 몇이 그를 쫓으려고 했으나, 화살이 날아와 머리를 맞히는 바람에 뜻을 이룰 수는 없었다. 아무리 투구를 쓰고 있다 해도 날아오는 화살을 무시하고 달리는 것은 강철 같은 간담을 가지지 않는 한 무리이리라.
그러나 검은 기수들은 초조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칼이나 창, 제각각의 무기를 빼들고 소그드를 향할 뿐. 소그드는 이빨을 드러낸 호랑이처럼 웃었다.
“헤에. 나도 목적이었나?”
걸어온 싸움은 받아줄 뿐.
일제히 내리쳐진 날붙이는 게세르의 유연한 움직임 덕분에 소그드에게 닿지 못했다. 기수들은 침착하게 무기를 수습해 재차 소그드를 노렸다. 소그드가 내리친 칼날이 그들 중 하나의 골통을 바수어 버렸지만, 그들에게 동요나 망설임은 없었다. 잘 벼려낸 칼처럼 정련된 살기.
“정말로 제대로 할 작정인가 본데….”
하지만 소그드의 입가에서 미소가 가시는 일은 없었다. 적은 수의 동료들과 함께 중원의 군대에 둘러싸인 적도 있고, 형제라 믿었던 자들에게 독을 대접받은 적도 있다. 이 정도의 일은 위기라 할 것도 아닌 터이다.
“위이잉―.”
그때 벌레 소리가 들렸다. 소그드가 분명 들은 적 있는 소리.
히히잉! 게세르가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초원에서 중원까지, 그리고 정엽을 찾을 때까지의 먼 길을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걸어온 말이 휘청거리고 있다. 게세르가 쓰러지기 직전, 소그드는 땅에 뛰어내렸다. 그러나 애마를 돌볼 사이도 없이 그는 내지르는 창칼과 말발굽을 피해 내달렸다.
“몰이는 사슴이랑 하라고…!”
가엾긴 하지만 이쪽도 목숨이 걸린 문제다. 소그드는 칼을 휘둘러 말의 다리를 베고 화살을 쏘아 눈을 맞추었다. 말은 발광하며 기수를 땅에 내팽개쳤다. 내동댕이쳐진 고통에 일순 몸이 굳은 자객의 목덜미를 베어내는 일은 간단했다.
위이잉… 또 그 소리다.
소그드는 손바닥을 펼쳐 소리의 근원을 콱 잡았다. 창칼을 피해내며 슬쩍 들여다보자 까맣게 물든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큭….”
현기증이 치밀어 올랐다.
부옇게 흐려진 시야 한쪽에 비치는 것은 나무 사이에 서 있는 누군가. 온통 검은 차림으로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그자가 웃는 듯 느껴진 것은 과연 기분 탓일까….
처음으로 뜨거운 것이 어깨를 스쳤다. 아니, 차가운 것일까.
“하핫….”
그럼에도 소그드는 웃었다. 어쩐지 자신에게는 일어날 리 없으리라 생각했던 일이 이루어지려 하는데도.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한 사람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