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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라이트 노벨 > 앨리스 노벨
· ISBN : 9788960523838
· 쪽수 : 320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에필로그
작가 후기
역자 후기
책속에서
그날 아침, 겨울의 끝을 고하는 새소리가 작은 마을 칸토르에 울려 퍼졌다.
봄.
이날 아침, 떠오르는 해와 함께 깨어난 마을은 삽시간에 들떴다. 오늘부터 나흘간에 걸쳐 매년 봄마다 열리는 ‘풍년 기원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태양이 천천히 떠오름에 따라, 물병을 기울인 여신상으로 장식된 분수가 자리한 원형 대광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둥글게 광장을 감싼 노점에는 봄의 도래를 기리는 것인지,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희희낙락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광장에서 남북으로 뻗어 나가는 두 개의 대로에 이르기까지 처마를 맞대고 늘어서 있는 노점에서는 오늘의 축제를 노리고 모여든 행상들이 기세 좋게 목소리를 내지르며 손님을 끌어 모았다. 그들이 판매하는 물품은 하나같이 칸토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공예품과 식재료였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온통 돌기가 솟아나 있는 붉은 과실, 판매대에 깔아 놓은 얼음 위에 진열된 각양각색의 생선. 소시지를 달아매어 놓은 노점에서는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식욕을 돋우는 향긋한 기름내를 흘려보내며 가게 앞을 지나는 손님들의 위장으로 직접 손을 뻗치고 있다. 손님과 가게 주인이 벌이는 흥정 또한 풍년 기원제의 볼거리 중 하나로,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환성이 더더욱 축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사이를 “미안해요, 잠깐만요”라고 말하며 종종걸음으로 나아가는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있었다.
어쩐지 앳되어 보이는 소녀의 얼굴에는 커다란 잿빛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콧등과 빨간 입술이 사랑스러운 그녀는 상아색 피부를 복숭앗빛으로 상기시키며 시선을 돌리지 않고 곧장 달려 나갔다. 안면 있는 행상들은 그녀를 발견하고 차례차례 “세레나!”하고 말을 걸었다.
“미안해요! 지금 좀 급해서, 다음에 꼭 들를게요!”
인파에 휩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에 비치는 세레나의 용모는 몹시 아름다웠다.
하지만 세레나는 이국의 피가 섞여 동양인 느낌이 나는 자신의 미모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비단결처럼 윤기 나는 검정색 머리카락을 “일하는 데 방해되니까”라며 세 가닥으로 땋아 내려 한쪽 귀 옆으로 밀어 놓고, 옷차림도 좀처럼 신경 쓰질 않았다. 스무 살인데도 화장을 하지 않는 탓에 미성년자로 오해 받을 정도로 어려 보였다. 일터인 여인숙 1층의 주점에서도 모르는 손님에게는 ‘꼬마 아가씨’라고 불리며 팁을 잔뜩 받거나 어린애가 올 데가 아니라며 꾸중을 듣고는 했다.
‘에이다, 얘가 정말! 또 맘대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다니.’
사람이 몹시 붐비는 길을 헤쳐 나가며 세레나는 빨간 머리의 소녀를 찾고 있었다.
에이다는 세레나가 일하는 곳의 여주인 되는 사람의 외동딸이다. 여주인은 어머니 일레느의 친구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줄곧 어머니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다.
나이 든 부모님에게서 늦둥이로 태어나 금이야 옥이야 곱게 자란 에이다는 덕분에 훌륭하리만큼 제멋대로인 아이로 성장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어머니의 애정을 절반 빼앗아 간 세레나를 적대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심지어는 세레나의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못된 버릇마저 생겼다.
‘하필이면 그걸 가지고 가다니……!’
에이다가 어제 가지고 간 목걸이는 세레나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유품이었다. 내일 광장에서 열리는 풍년 기원제의 가장 큰 행사인 ‘춤추는 요정들’에서 입을 의상에 맞춰서 목에 걸려고 꺼내 놓은 그 목걸이가 방 안에서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여태까지 에이다가 훔쳐 간 물건은 많았지만, 그녀는 어느 것이든 “세레나가 준 거야”라거나 “세레나가 빌려 줬어”라면서 여관을 꾸리는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해 왔다.
이상하게 여긴 여주인이 어찌 된 일인지 캐물은 적이 한 번 있었지만 에이다에게서 어머니의 애정을 빼앗았다고 죄책감을 느꼈던 세레나는 그녀의 말이 거짓이라고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주인도 그 목걸이가 세레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지 알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아주머니가 알기 전에 찾아와야 하는데.
혼잡한 가운데서도 에이다의 빨간 머리카락은 곧바로 눈에 띄었다. 대광장을 가로질러 반대편 길로 들어서는 바로 앞 노점 근처에서 에이다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있었다.
“에이다!”
뒤돌아본 에이다의 목 언저리에서 어머니의 목걸이가 눈부시게 빛났다. 한발 늦었다는 생각에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에이다에게 바짝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