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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일본사 > 일본근현대사
· ISBN : 9788961950947
· 쪽수 : 292쪽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8
머리말 : 신오쿠보의 거리에서 11
연표 20
이 책에 나오는 사건의 현장 지도 26
1장 1923년 9월, 대량학살의 거리에서 29
1923년 9월 1일 토요일 오전 11시 58분 간토 지방
매그니튜드 7.9 30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새벽 시나가와 경찰서 앞
“조선인을 죽여라!” 36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오전 5시 아라카와·구 요쓰기바시 다리 부근 : 마치 장작더미처럼 41
1923년 9월 2일 일요일 낮 가구라자카시타
가구라자카, 한낮의 흉행 45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오후 경시청
경찰이 유언비어를 믿을 때 49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오후 2시 가메이도 역 부근
소요의 거리 55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오후 8시 지토세 가라스야마
모밀잣밤나무는 누구를 위한 걸까 59
1923년 9월 구 요쓰기바시 다리 부근
“아무것도 안 했어”라며 울고 있었다 66
1923년 9월 3일 월요일 오전 우에노 공원
줏대 없이 떠다니는 소시민 70
1923년 9월 3일 월요일 오후 3시 히가시오지마
중국인은 왜 살해당했을까 75
1923년 9월 3일 월요일 오후 4시 에이다이바시 다리 부근
애매함 속에 매장된 것은 …… 83
1923년 9월 4일 화요일 오전 2시 게이세이 선 아라카와 철교 위
몸에 남은 무수한 상처 88
1923년 9월 4일 화요일 아침 가메이도 경찰서
경찰서 안에서 92
1923년 9월 구 요쓰기바시 다리 부근
병사가 기관총으로 죽였다 97
2장 1923년 9월, 지방으로 확산되는 악몽 102
1923년 9월 간토 북부 지방
유언비어는 기차를 타고 103
1923년 9월 4일 화요일 밤 구마가야
‘만세’ 소리와 함께 108
1923년 9월 5일 수요일 4시 반 구 라칸지 부근
제물이 된 16명 116
1923년 9월 6일 목요일 오전 2시 요리이 경찰분서
어느 이웃의 죽음 122
1923년 9월 고엔지
고엔지의 ‘반달 할아버지’ 129
1923년 9월 9일 일요일 오전 이케부쿠로
저기 조선인이 간다! 133
1923년 9월 기헤이바시 다리
무사시노 숲 속에서 137
1923년 9월 12일 수요일 새벽 사카사이바시
왕희천, 칠십 년 동안의 ‘행방불명’ 144
3장 그 9월을 살아 낸 사람들 153
너무나 심한 광경이었다 154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의 아버지가 살아 낸 인생
“선인들 머리통만 뒹굴고 있었습니다” 161
아이들이 본 조선인 학살
조선인으로 오인 받은 일본인 169
“센다 코레야”를 낳은 사건
75년 후 발굴된 유골 175
나라시노 수용소에서 살해된 사람들
“저 조선인들에게는 손가락 하나 못 댄다” 180
이웃을 지킨 마을 사람들
“화석이 되어라, 이 흉한 해골아!” 189
아키타 우자쿠의 ‘쓸쓸함’
“그대들은 누구를 죽였다고 믿는가” 196
오리구치 시노부가 본 일본인의 다른 면모
“하물며 살육을 기뻐하다니” 200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반어법
어느 ‘무소속 인간’의 분노 207
반골적인 제국 의회 의원 다부치 도요키치
조감도 I
학살은 왜 일어난 것인가? 214
조감도II
도대체 몇 명이 살해되었는가? 221
4장 90년 후의 ‘9월’ 226
추도하는 사람들 227
‘요쓰기바시’ 다리 옆에 세워진 비
증오하는 사람들 236
되살아나는 말, ‘조선인을 죽여라!’
2005년, 뉴올리언스의 거리에서 245
도쿄는 지금도, 90년 전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253
이시하라의 ‘삼국인’(三國人) 발언과 엘리트 패닉
‘비인간’화에 저항하다 260
지은이 후기 266
참고문헌 일람 269
간토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있는 책들 279
옮긴이 후기 281
인명 대조표 287
지명 대조표 289
리뷰
책속에서
1923년(다이쇼 12년)의 간토대지진은 1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대참사였지만, 이를 더욱 처참하게 만든 것은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있다’거나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헛소문을 진짜라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칼이나 죽창 등을 쥐고 저지른 조선인(덧붙여 중국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었다. 행정 당국이나 군조차 이러한 유언비어를 사실로 받아들여 퍼뜨렸고, 때로는 학살에 가담하기까지 했다. 그 당시 도쿄는,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나 르완다와 같은 대량학살의 도시였다.
― 머리말
지진이 다시 올 거래 … … 시나가와는 쓰나미에 당했다는군 … … 수상이 암살되었다나봐 … … 그중에서도 점점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조선인 폭동’이라는 유언비어였다. 조선인이 각지에서 방화를 하고 있다 … …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며 돌아다닌다 … … 조선인이 … … 조선인이 … … .
― 매그니튜드 7.9
간토대지진 당시의 중국인 학살에 관해 연구를 한 니키 후미코는 학살의 배경에 노동 브로커의 입김이 있었다고 말한다. … 일본인보다 20퍼센트나 싼 임금으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는 일본인 노동자에게는 물론 인부를 알선하고 임금의 일부를 착복하던 노동 브로커의 입장에서도 아니꼬운 존재였기에 그들을 배척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한다.
― 중국인은 왜 살해당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