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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디자인/공예 > 디자인이야기/디자이너/디자인 실기
· ISBN : 9788970595610
· 쪽수 : 292쪽
책 소개
목차
15년 공백에 대한 변
처음으로 쓰는 서문
전차표
오만한 병
투명 레이디
디자이너의 홍역
어려운 작업
외국인 심사원의 심정
태평양의 우울
다 먹지 못할 파리
전통종이 회랑
표고버섯과 르네상스
라벨 장수
기우와 오디션
사막을 찾아서
캔슬의 맛
해바라기밭과 하이테크 프랑스
포스터를 훔쳐라
98 완성 직전에 찢어버리다
전 세계 호텔에서 편지가 오다
쌀과 디자인
커피의 배경음악이 들려온다
[v] 이야기
문학의 책등
모더니즘의 고독과 쾌락
잊고 있던 감수성
낙관적으로 마개를 따자
라단조의 색연필
상자쟁이 혹은 과잉포장전
박물관에서 귀동냥하기
러닝하이
대량 생산의 어지럼증
지금도 수차는 돌고 있다
행복한 화약고
취미 비슷한 것
슈퍼 프리미엄 인스턴트커피
디자인 펑고
구급차에 실려 가다
어른을 위한 옥상
종이를 디자인하다
사진가를 만나다
가락국수 디자인
세쓰 씨의 가게
내면에 낚싯줄을 드리우다
작업실 차모임
거리의 악사에게 사로잡히다
책 디자인의 변화구
제대로 된 시골 광고
칭찬받는 처지
라멘 사발의 로망
건축가들의 파스타 전람회
활자가 나아갈 길
+1 국어 입시 출제에 이용해 주세요
+2 밀라노로 향하는 아침
+3 물의 즐거움
어느새 후기를 쓰다
후기에 보태다
리뷰
책속에서
라단조의 색연필
책상 앞 연필꽂이에 꽂혀 있는 색연필을 헤아려보니 스물여섯 자루다.
어릴 적 처음 쥐어본 색연필은 12색. 그것이 점차 24색, 36색으로 풍부해지다가 미대에 입학할 때는 없는 돈을 탈탈 털어 60색 세트를 구입했다. 그러나 그것을 정점으로 실제 사용하는 색은 점차 줄어들어 지금에 이르렀다.
색이란 것이 묘해서 내 감성에 맞는 색상은 비교적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박스 안에 60색이 들어 있어도 거의 쓰지 않는 색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노랑 하나만 보더라도 나는 레몬옐로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 대신 오렌지색이 살짝 섞인 크롬옐로를 자주 쓴다. 따라서 박스에 나란히 누운 색연필 중에서도 자주 쓰는 것과 거의 손을 대지 않는 것의 키 차이가 극단적으로 벌어진다.
짤막해진 색을 보충하려고 상자 단위로 구입하자니 거의 쓰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색연필들이 아깝고 안 쓰는 색연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거치적거려서 사용 빈도가 높은 것만 연필꽂이로 옮겨놓고 키가 작아지면 그때그때 보충해 나간다.
그렇게 해서 지금은 26색 정도로 정해졌다. 26색이라는 수는 꽤 불안한 느낌도 들지만, 음계를 생각해 보면 결코 적은 것도 아니다. 미묘한 쏠림이 있으면서도 이것은 26색이라면 부족할 것 없는 색채 계열을 형성하고 있다. 기본적인 12색 라인을 다장조에 비유한다면 내 개성으로 약간의 쏠림이 있는 이 26색 라인은 요컨대 라단조쯤 되려나 하고 나름대로 납득하고 있다.
물론 일반적인 작업에서 이 정도 색상이면 충분하다는 말은 아니다. 인쇄 현장 같은 데서는 미묘한 색채 조화를 얻기 위해 컴퓨터 색차계로도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한 색 뉘앙스를 찾아서 무수하게 색 교정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모든 색을 망라하자면 수만 가지 색이 있어도 부족하다. 또 색이라고 말하지만 종이나 플라스틱 같은 소재 차이에 따라 인상이 전혀 달라지고, 같은 종이라도 지질 차이에 따라 표정이 많이 달라진다. 요컨대 현상으로서의 색채는 무수히 많지만 음악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을 제어하는 규칙 같은 것이 있고 그것이 색연필 색채 라인업으로 표현된 것 같다는 것이다.
멀리 에둘러 표현하고 말았지만, 이 색연필 라인업을 바라보며 라단조라고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장조나 사장조 같은 비교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를 세대로 구분할 경우, 밝고 활기찬 색조를 보여 주는 것은 비교적 윗세대이다. 우리 아버지쯤에 해당하는 이 세대는 말하자면 전형적인 다장조이다. 색채에 대하여 대단히 긍정적이고 작품의 색상 구사는 밝고 탁한 구석이 없이 예쁘다. 1960년대 요코오 타다노리의 작품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세대가 조금 더 내려오면 색상 구사에 굴절이 나타나고 약간 냉소적인 중간색을 구사하는 것이 눈에 띈다. 단조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색상에 살짝 우울함이 엿보인다.
첫 세대의 자식 세대, 즉 우리 세대 색채는 어떠냐 하면 확실히 축축한 습기를 띤다. 윗세대의 색상 구사에 대한 반동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상당히 굴절된 색상, 피아노로 말하면 검은 건반을 많이 두드리지 않고서는 연주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상적인 색상을 구사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사이키델릭 스타일 색채가 범람하던 1960년대에 유소년기를 보낸 우리는 순수한 인공적 원색에는 적극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색이라면 천연의 자연색에 끌리고 만다. 밝고 선명한 색보다 낡은 책의 갈변한 종이 같은 색채나 낡은 골판지의 흐릿한 회색
혹은 녹슨 철의 위태로운 발색에서 설렘을 느끼고 식물의 씨앗이나 모래색 같은 시크하고 자연스러운 색에서 리얼리티와 공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화려한 색채를 일체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원색을 쓰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멜랑콜리를 눈곱만큼 집어넣어
미묘하게 억제시키고야 만다.
아마도 자연이나 생태에 대한 관심이라는 시대적 감수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유행색과는 다른 차원에서 색채도 은밀한 변화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포스터를 훔쳐라』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