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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디자인/공예 > 디자인이론/비평/역사
· ISBN : 9788970596822
· 쪽수 : 110쪽
책 소개
목차
표면장력의 미학
사라진 영상
엘레강트한 파리
마카로니 구멍의 비밀
손바닥의 장정
종이편지의 우아함
미라와 리사이클
콩코드와 신칸센
도시와 목욕탕
손상된 표고버섯의 실력
검테이프가 전하는 메시지
우산의 슬픔
공명하는 제철 음식
글자를 살리는 예절
용의 기상
피라니아의 맛
아마조나스극장
사하라에서의 체험
기억의 디자인
마요네즈의 구멍
백색의 기계
사각의 이유
마음을 전하는 천
일본을 배운다
배로 옷을 입자
마치고 나서
리뷰
책속에서
글자를 살리는 예절
글이나 글자 무리를 어떻게 배열하는가 하는, 이른바 ‘레이아웃’ 작업은 지금까지 프로의 일이었다. 그러나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등장으로 초보자도 간단히 이것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글자들은 예의를 벗어나게 되었다. 이것을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천박하다’고 표현하고 싶다. 특히 홈페이지나 연하장 등을 보면 혹독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물론 테크놀로지의 진화에 맞춰 문자는 보다 신선한 표정을 갖출 수 있다. 종이나 인쇄의 낡은 규칙을 그대로 적용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글자를 표현하는 데에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본에서는 어릴 때부터 ‘서예’를 배우기 때문에 멋진 서체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활자’에는 상당히 어둡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명조체’는 중국에서 탄생해 일본에서 세련미를 첨가한 글자체로 독자적인 아름다운 형태를 갖추고 있다. 가로선이 가늘고 세로선은 굵다. 부리는 ‘우로코’라 불리는 비늘 모양의 삼각형 악센트를 갖추어 문자에 강약을 줌과 동시에 읽기에도 편하다. 중국에서 상형문자가 발명된 지 수천 년에 걸쳐 이 형태에 이르렀다. 그런 은밀한 부분에 문화의 질을 지탱하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또 글자의 크기나 그 간격, 그리고 글줄사이 등을 이용해 긴장감이나 품격을 만들어내는 것이 ‘조판’이라는 기술이다. 알파벳 언어권에서도 글자의 조합은 매우 엄격하게 다루어지는데, 그 기본은 글자크기, 글자사이, 글줄사이다. 글자를 다루는 기술은 이 기본이 매우 중요한 만큼 구미의 그래픽디자이너는 이 부분을 철저하게 단련한다.
한자와 히라가나, 가타가나, 알파벳, 숫자가 혼재해 있는 일본의 식자는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오랜 노력으로 세계에서도 꽤 인정을 받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때 나타난 IT 혁명. 미디어의 대중화에 의해 글자나 식판은 혼돈의 물결에 침몰되어가고 있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다도나 꽃꽂이를 즐기듯 일반인들도 미디어를 다루는 소양의 하나로서 글자를 우아하게 제어하는 예의를 갖추면 어떨까? 미래의 글자 문화를 짊어질 사람은 디자이너들만이 아니다. “악필이라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듯 글자를 배치할 때에도 좀 더 정성스런 마음을 기울이는 것만으로 세상은 변한다.
그렇게 된다면 나도 ‘하라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하나 내걸어볼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