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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 ISBN : 9788971380260
· 쪽수 : 360쪽
책 소개
목차
추천사 7
발간사 9
서문 15
1. 하나님께 영광 21
2.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41
3.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59
4. 하나님은 영원한 왕이십니다 85
5.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103
6.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분이십니다 127
7. 하나님께 모든 답이 있습니다 151
8.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173
9. 거룩, 거룩, 거룩 197
10.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219
11.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243
12. 하나님은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265
13.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 289
후기 309
역자후기 311
낸시 라이큰 테일러의 스터디 가이드 313
책속에서
하나님의 불가시성(invisibility)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물리적인 존재라면 우리는 그분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때때로 모세가 보았던 영광의 구름 같은 가시적인 형태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왕”(딤전 1:17)이십니다. 그리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분”(딤전 6:16)이십니다. 그분은 영이시기에 비가시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의심”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성경 인물, 도마도 그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요 20:25). 제가 가끔 설교하는 양로원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언제나 그는 우리 예배에 거의 참여할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국에는 항상 거절의사를 표시합니다.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마치 논쟁에 종지부를 찍듯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볼 수 없는걸요.”
애석하게도 그 사람의 신학은 자신의 소견에 갇혀 버린 신학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시성은 그분의 주요한 속성입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거나 그분의 정의가 무슨 색인지 판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내가 아내의 성격을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그녀의 사랑을 본 적도 없고, 그녀의 친절함을 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비록 눈으로 볼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분명히 실재합니다. 하나님의 속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그분이 존재하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요나는 자신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뱃삯보다 더 큰 대가를 치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배 전체를 샀던 것으로 보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요나가 “그의 삯을 지불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녀(배)의 삯을 지불했다”라고 말합니다. 즉 배 전체를 구매하는 값을 치렀음을 의미합니다.
유대인 주석가들은 요나가 도주를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탕진했다고 가르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선교비 마련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소모합니다. 요나는 “니느웨 내지 선교”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의 모든 소유를 낭비해 버렸습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를 통째로 사버린 후, 그는 아마 니느웨로 갈 여비가 전혀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혹시 나중에 니느웨로 가고자 하더라도, 그는 더 이상의 여력이 없었음이 분명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면서 요나는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인내심만 시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시험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 성경은 명쾌하게 이를 설명합니다. 새개역표준성경(New Revised Standard Version)은 3절에서 두 번, 10절에서 한 번 이 사실을 기술합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도망하려 하여”(욘 1:3). 요나의 이야기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죄악임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요나는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실천신학의 측면에서 실험을 행했습니다. 시편 139편에서 다윗은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요나는 다윗의 결론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원했습니다.
이사야가 이와 같은 진정한 회개를 이전에도 해본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따라서 그동안 해온 대로 다른 사람에게 회개를 외치는 것이 그의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분명한 감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예루살렘을 향해 이사야가 외친 재앙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 번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5:19, 24)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사 5:16)라고 말입니다. 이사야는 이미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사야는 그 거룩하신 분을 직접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설교하며,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실제로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가 고백한 죄에 대해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부정한 입술. 그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 자신이 가장 헌신된 분야에서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사야는 선지자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더러운 입을 가진 죄인임을 알지 못한 채 그 일을 해왔던 것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에야 그는 자신도 부정한 입술을 가진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