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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72755890
· 쪽수 : 292쪽
책 소개
목차
풀코스 21일 전
마라톤 풀코스 참가일은 3주 남았다·9
마라톤의 전설·18
20일 전
마라톤은 어느 날 갑자기 내게로 왔다·29
남자가 달린다·34
19일 전
달리기는 슬프다·39
첫 번째 10Km 코스 참가기·48
18일 전
우리는 트랙을 달렸다·59
요양보호사들·67
17일 전
지루함을 피하는 방법·79
헤갈·83
16일 전
남편도 달렸다·88
곤두박질 남자·98
15일 전
영어수업·105
로즈마리치킨·113
14일 전
두 번째 10Km 코스 참가기·117
13일 전
전략적 식생활·123
스포츠 브라·126
12일 전
권태곡선·130
오버트레이닝증후군 테스트·139
11일 전
병원 휴게실·144
모들뜨기·156
남편의 간호방법·159
나의 간호방법·166
10일 전
꽃신은 어디로 갔을까·171
마라톤에 어울리는 음악은 어떤 걸까·177
9일 전
삼겹살냉채·181
나의 유효기간·191
당연한 순환·196
8일 전
반품 인간·202
7일 전
하프코스 참가기·207
미연, 제니퍼 그리고 나·212
페이스분배표·217
6일 전
금연은 쉽다·225
택시를 탈 수 있는 자격·229
5일 전
스물다섯 바퀴를 돈다·235
4일 전
오직 고통을 견딜 뿐이다·237
3일 전
미연의 결정·243
2일 전
카메라지·248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의 아이에게·256
1일 전
마지막 훈련·257
드디어 풀코스 날
풀코스 마의 벽 지점에서·260
그 아이가 나를 달리게 한다·269
작품해설
그대, 육체의 목소리―달리는 여자에 부쳐 | 양경언·271
작가의 말·290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처음 그날 밤 일을 확인하고자 물었을 때 남편은 20분간 부인했다. 그 20분이 20년 같았다. 노트북 파일과 메일 문장들이 들먹여지고 날아가고 던져지고 분해된 끝에 남편은 무릎을 꿇었다. (……) 무릎 꿇은 남편의 목을 조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대신 집을 뛰쳐나와 달렸다. 머릿속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생각들로 들끓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많은 생각들 사이로 이상한 감정 하나가 비어져 나왔다. 안쓰러움이었다. (……) 얼마를 달렸는지도 모른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예상치 못한 내 커다란 울음소리에 나도 놀랐다. 눈물을 뿌리며 달렸다. 그러자 여태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생각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마라톤! 믿을 수 없었다.
내 삶에서 마라톤 코스의 급수대와 같은 절실한 것 찾기. 나는 지금 그 길을 달리고 있는 건가. 지금까지 내게 일어난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불임, 시숙의 아이 사고, 동생의 사고, 어머니의 사고, 주기적으로 일어난 사고들. 그건 삶이 내게 알리는 경보가 아니었을까. 긴급을 알리는 그 경보들을 모른 체하고 살아온 것일까. 남편의 그 일을 알고서야 귓등으로 흘리던 경보를 제대로 듣게 된 것일까. 그런 생각들로 울적하고 억울해진다. 나는 겁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는 여기까지야, 네 유효기간은 지났어, 남편에게 그런 식으로 폐기처분 되는 상상에 휩싸이기도 한다. ‘다시 처음으로 회복할 수 있어.’ 남편의 그 웅얼거림에 묶여서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내가 아이를 낳았더라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었더라도 이렇게 미적거렸을까. ‘처음으로 회복할 수 있어.’ 남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만 같다.
항상 달리는데도 왜 달릴 때마다 힘이 드는 걸까. 하프코스를 완주한 뒤로 훈련을 대하는 기분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그건 기분뿐이었다. 실제로 달리는 건 달라진 점이 없었다. 익숙해지면 쉬워질 줄 알았다. 참고 달리면 쉬워지는 날이 올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일에 익숙해질 뿐 그 일이 쉬워지는 건 아니었다. 쉽게 달려지는 날은 오지도 않을 것이고 애당초 그런 건 있지도 않은 것이었다. 실망스러웠다. 삶에 보기 좋게 속은 기분이었다. 결국 알게 된 건 결코 쉬워지는 일은 없으며 익숙해질 뿐이라는 것, 그걸 알고도 계속 달릴 수밖에 없는 게 삶이라는 것뿐. 맙소사.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