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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72757375
· 쪽수 : 244쪽
목차
1984 기요미
1990 모모코
1993 야요이
2000 미나에
2005 시즈에
2009 나오코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아내 있는 남자여도, 파멸이고 파괴여도, 준코에게 그 남자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등짝이며 옆구리에 오싹 한기가 훑고 지나갔다.
혹시 이사무의 아이가 생기더라도 자신은 낳지 않을 것이다. 그런 임신은 단순한 ‘실수’일 뿐이다. 내 인생을 바쳐야 할 것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없는 것보다 나은 남자’에게 온몸을 던져 의지할 수는 없다. 쓰레기통 속의 둘둘 말린 열성의 잔해가 자기 자신인 것만 같아서 기요미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_ 「1984 기요미」에서
준코와 함께 있으니 어디에도 모모코의 자리는 없는 것만 같았다. 다다미 바닥에 일어난 거스러미를 쳐다보고 있기도 거북살스럽고, 그렇다고 창문을 내다보면 바람에 흔들릴 일도 없는 팬티며 브래지어가 매달려 있다. 이런 게 준코의 행복이라면 자신은 바다 위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던 걸까. 준코의 양어깨에 길게 땋아 내린 머리에서 삐져나온 머리칼 끝만 바라보았다. 모모코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준코, 연하장에 행복하다고 써 보냈지? 나, 그 말 믿었어. 그래서 널 만나러 온 거야.”
준코의 미간이 좁혀졌다. 모모코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눈치였다.
“준코, 여기서 대체 뭐 하고 있어?”
저런 속옷을 입고, 호적에도 올려주지 못하는 그런 남자의 아이를 낳고,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어…….
_ 「1990 모모코」에서
동봉한 사진에는 수줍음 타는 창백한 얼굴의 소년과 에이프런 차림의 준코가 찍혀 있었다. 등 뒤로 라면 가게 계산대가 보였다. 어깨를 맞댄 엄마와 아들의 모습이다. 미나에는 준코의 화장기 없는 얼굴과 길게 땋은 머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고등학교 조리 실습 시간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기미가 번진 뺨, 눈과 입에 퍼진 주름이 준코의 현재 삶을 말해주고 있었다. 피부 손질도 못 하고, 유행 따라 옷 한 벌 못 사는 십여 년이 모조리 그 사진에 찍혀 있었다. 이게 지금의 준코다.
한참 보고 있으려니 그 웃는 얼굴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온몸에서 스르륵 맥이 빠지는 것 같았다. 다니카와가 이 사진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허영기 가득한 미나에와 비교하면서 혹시 후회하지는 않을까.
_ 「2000 미나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