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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72758372
· 쪽수 : 496쪽
책 소개
목차
시작 나무 거리들
현재 기묘한 일
뭐가 잘못된 거야?
과거 반나절 근무
현재 빛의 잎들
과거 덜떨어진 인간들
현재 외계인 실험
과거 이 지역의 결실
현재 외계인 실험(이어서)
성공적인 파티의 기술
죽이는 시간
현재 다른 세계가 있는데 그게 바로 이 세계다
과거 예쁘디예쁜 길
현재 이 푸르고 즐거운 세상
과거 원죄
미래 나무 거리들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그러다 페어팩스 부인이 사라졌다.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별안간에, 그리고 수수께끼처럼. 그날 프랜시스 경은 당일치기 사냥을 나가 보기 좋게 토실토실한 암사슴의 심장을 꿰뚫고 돌아온 뒤 아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엌일을 보는 하녀 아이 하나가?일자무식인 계집아이가?페어팩스 부인이 오크 부인 밑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노라고, 부인의 초록색 능라 드레스가 주변 나무들과 분간하기 어려울 때까지 점점 희미해지는 모습을 보았노라고 떠들어댔다. 하녀는, 페어팩스 부인이 점점 흐릿해지면서 이 집안에, 과거와 미래에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렸노라고, 또 그 소름 끼치는 비명 소리는 부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뒤에도 오랫동안 허공에 메아리쳤노라고 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과부가 아이들에게 들려줄 슬픈 소식이 있다고 말했다. 찰스의 얼굴은 고통을 담은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아빠도 우리를 떠난 건 아니죠?” 찰스가 과부에게 소곤거리자 과부는 슬프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나, 찰스.”
“아빠는 돌아올 거예요. 아빠는 돌아올 거라고요.” 찰스가 완강하게 저항했다.
비니가 리치 티 비스킷 하나를 차에 적셔서 커다란 설치류처럼 야금야금 깨물어 먹었다. 과부의 검버섯 핀 늙은 손이 달달 떨리는 바람에 받침접시 위에서 찻잔이 달그락거렸고 그러는 사이 과부가 말했다. “아빠는 돌아올 수 없다, 찰스.”
“이지?” 아버지가 어둠 속에서 소곤거린다. “너 자니?” 그러고는 발끝으로 살금살금 다가와 내 침대 끝에 걸터앉고는 손안에 든 무언가를 빤히 쳐다본다. 내가 겨우 몸을 일으켜 앉자 고든이 손안에 든 것을 내게 들어 보인다. 달빛을 받아서 검은빛보다 더 검어 보이는 까만 머리 다발이다. “너희 엄마 거란다.” 고든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온몸에 오싹 전율이 흐른다. 드디어 고든이 내게 엘리자 얘기를 해주려고 한다. 엘리자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자신이 얼마나 엘리자를 사랑했는지, 두 사람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엘리자가 떠난 것은 얼마나 끔찍한 실수였는지, 줄곧 엘리자는 얼마나 돌아오고 싶어 했는지.
그 대신, 고든의 눈길이 어둠을 뚫고서 내게 닿는 게 느껴질 때쯤 그가 생기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네 엄마를 죽였다.”
“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