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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72759959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돌담에 속삭이는 007
작품해설 225
작가의 말 238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또 다른 무리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수십 명씩 굴비 두름처럼 한 줄로 나란히 엮여 있다.
다들 똑같이 등 뒤에서 손목이며 팔뚝을 밧줄 혹은 철사 줄로 결박당한 모습. 밧줄이 고삐처럼 목에 그대로 휘감겨 있는 사람도 있다. 하나같이 백지장으로 변한 얼굴들. 목덜미와 가슴께까지 온통 피투성이인 까까머리 소년. 두 눈을 허옇게 부릅뜬 채 굳어버린 노인. 양팔로 가슴을 그러안고 새우처럼 웅크린 젊은 여자. 아직도 입에서 검은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는 청년…….
거기엔 아이들도 있다. 두어 살, 예닐곱 살, 까까머리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젖먹이를 품에 안은 젊은 어미.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얼굴이 짓이겨진 남자들. 두 눈을 빤히 뜨고 이쪽을 노려보는 노인. 산발한 머리채를 미역 줄기처럼 검게 풀어 헤친 채 떠내려가는 여자……. 은은한 달빛 아래 끝없이 펼쳐지는 그 무서운 광경 앞에서 그는 차마 숨조차 쉬지 못한다.
우린 이렇게, 당신들 눈앞에 존재하고 있어.
그럼에도 당신들은 우릴 알아보지 못하지. 왜냐면 당신들이 애초에 우릴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지. 보려 하지 않으므로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므로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거야. 애당초 들으려 하지 않고 느끼려 하지 않으므로,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우리의 존재를 느낄 수가 없는 거야.
그때 자꾸자꾸 뒤를 돌아다보는 당신의 두 눈 속에서 난 텅 빈 구멍 하나를 보았어. 한없이 깊고 캄캄한 어둠의 동굴. 그 커다란 구멍 속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어.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시신들. 검은 피를 흘리며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 떠내려가는 사람들. 아아, 참으로 무섭고 슬프고 끔찍한 광경이었지.
그제야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어. 아, 당신도 우리처럼 ‘아파하는 마음’이로구나. 우리는 서로가 똑같은 ‘아파하는 마음들’이구나. 그러기에 당신 또한 오래도록 온전히 잠들지 못하고 살아왔구나…….
그러니까 바로 그날부터였어. 우리가 당신의 집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