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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일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73815678
· 쪽수 : 335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우리는 소수집단이니까요.”
“소수집단?”
“늙은이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료지는 빨간 고추를 접시 구석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앞으로 자꾸자꾸 더 많아지겠죠. 이제 소수파인 우리 젊은이들은 그 늙은이들을 부양해야만 해요. 싫든 좋든 군말 없이.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단 말입니다. 이 사회에서는 다수 집단의 의사가 존중되지요. 다수파인 늙은이들에게 알랑거린 정치가가 선거에 이겨서 국회의사당에 모이고, 그 늙은이들을 위한 정책을 계속해서 입법화할 겁니다. 그 말은요, 결국 그 법을 따르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줄곧 늙은이들이 하라는 대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뜻이에요. 배고프다, 밥을 달라. 허리가 아프다, 병원에 보내달라. 심심하다, 노인들을 위한 놀이시설을 만들라.”
료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늙은이들의 응석을 받아주기 위해 언제까지나 착취당하면서 살게 될 겁니다. 숭고한 민주주의의 위대한 다수 의사라는 미명 아래. 그게 얼마나 지긋지긋한 일인지, 선생님도 알잖아요? 지금도 그래요. 적자국채라는 그 방대한 빚을 대체 누가 갚는 겁니까? 정치가요? 기업가? 정말 웃기지 말라 그래요. 그 책임이 드러날 즈음이면, 그 작자들은 이미 관에 들어가 있겠죠.”
소꿉놀이에 싫증이 난 걸까? 한 여자아이가 일어서서 주인 없는 성을 내려다보았다. 수돗가에서 물을 뜨는 남자아이 쪽을 힐끗 쳐다본 그 눈이 일순 반짝였다. 나머지 두 여자아이도 다가와 함께 성을 바라보았다. 주인 없는 성이 세 명의 여자아이들에게 포위되었다. 제일 처음 일어선 아이가 탑 하나를 발로 천천히 뭉개버렸다. 너무나도 시원스레 부서지는 그 모습에 후련함을 느낀 걸까. 정성을 다해 쌓아 올린 성을 세 명의 여자아이가 교대로 짓밟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다. 남자아이가 돌아왔다. 물이 가득 담긴 물통을 손에 든 채, 그 소년은 파괴되어가는 자신의 성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