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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기타국가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31010237
· 쪽수 : 312쪽
책 소개
목차
판사와 형리
혐의
작품 해설: ‘가벼운’ 옷을 입은 ‘무게 있는’ 문학 ― 뒤렌마트 탐정소설의 세계
뒤렌마트 연보
리뷰
책속에서
클레닌은 자동차 문을 열고 낯선 자의 어깨에 친절하게 손을 얹었다. 그러나 순간 그는 그 남자가 죽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수리에 총알이 관통해 있었다. 그제야 클레닌은 오른편 차 문이 열려 있는 것도 깨달았다. 차 안을 보니 피가 많이 흘러 있지도 않았고, 시체가 걸친 짙은 회색 코트도 말짱해 보였다. 외투 호주머니에서는 노란 지갑의 한쪽 끝이 빠져나와 비쳤다. 그것을 뽑아본 클레닌은, 사망자가 베른 시경 경위 울리히 슈미트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40년 동안이나 자네는 기를 쓰고 내 뒤를 추적했지. 이것이 계산서라네. 그 당시 토파네 시 교외의 그 곰팡내 나는 주막에서 터키제 담배 연기에 휩싸인 채 우리가 무엇에 대해 토론했는지 기억이 나는가, 베르라하? 자네의 명제인즉 인간의 불완전함, 즉 우리가 타인의 행동 방식을 자신 있게 예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아가 만사에 개입하여 작용하는 우연을 고려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범죄가 폭로되고 마는 근거라는 거였지. 인간은 장기 말처럼 조작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자네는 주장했네. 그와는 달리 나는 반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런 명제를 내세웠지. 바로 인간관계의 뒤얽힌 상태야말로 인식조차 되지 못할 완전범죄를 가능케 한다는 것, 이 같은 이유에서 엄청나게 많은 범죄가 처벌되지 않음은 물론, 짐작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감추어져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었네.
그는, 잔뜩 곪은 종기처럼 어떤 수용소에든 득실대던 수용소 의사들 가운데 하나였지요. 학문적 열의를 갖고 대량 학살에 헌신했던 파리 떼들, 몇백 명 포로에게 공기며 페놀, 석탄산, 하늘과 땅 사이에서 벌어진 그 악마적 쾌락을 위해 수중에 닿는 것이면 그 밖의 무엇이든 주사를 놓았던 무리들, 심지어는 필요에 따라 마취도 하지 않고 인간을 상대로 실험을 해대던 놈들, 그것도 뚱뚱보 원수가 동물의 생체 해부를 금지했기 때문에 부득이한 일이라고 큰소리를 쳐가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넬레 한 사람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에 관해 얘기할 필요가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