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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2814773
· 쪽수 : 268쪽
책 소개
목차
서문
2판 저자 서문
현명한 피
옮긴이의 말
플래너리 오코너 연보
리뷰
책속에서
헤이즐 모츠는 녹색 플러시 천을 입힌 좌석에 몸을 앞으로 숙이고 앉아, 마치 기차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하려는 듯 잠시 창문을 응시하더니, 통로를 따라 객실 맨 끝으로 시선을 돌렸다. 같은 칸 좌석에 마주 앉아 있던 월리 비 히치콕 부인은 이런 초저녁 광경이야말로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면서, 모츠에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집으로 돌아가나 봐요.” 부인은 그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부인 눈에는 그가 스무 살이 갓 넘어 보였지만, 그의 무릎 위에는 나이 지긋한 시골 목사가 쓸 것 같은 테가 넓고 뻣뻣한 검은 모자가 놓여 있었다. 그는 화려한 푸른색 양복을 입었는데, 소매에는 아직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그는 대꾸는커녕 무언가를 바라보면서 부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부인은 멋쩍어서 짐짓 무심한 척하며 가격표를 슬쩍 훔쳐보았다. 그의 양복은 11달러 98센트짜리였다. 그녀는 그가 그만 한 가격의 사람이라 생각하고는, 이제 당당하게 그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톨킨햄에서 둘째 날 밤, 헤이즐 모츠는 번화가를 따라 상점들에 바짝 붙어서 걸었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마치 발판처럼 보이는 긴 은빛 광선이 검은 하늘을 가로지르고, 그 뒤로 깊숙이 펼쳐진 수천 개의 별들은 우주의 온 질서가 담긴 거대한 건축 작업이 영원에 걸쳐 완성되어 가는 것처럼 매우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하늘을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톨킨햄의 상점들이 목요일에는 밤까지 영업을 하기 때문에 손님들은 쇼핑을 더 즐길 수 있었다. 헤이즈의 그림자는 그의 뒤에 있기도 앞에 있기도 했고, 때로 다른 사람들의 그림자로 인해 흐트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홀로 그의 뒤에 늘어져 있을 때는 뒷걸음질 치는 빼빼 마른 소심한 그림자일 뿐이었다.
어머니가 물통을 두고 회초리를 들고서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물었다.
“너 뭐 봤니?”
“너 뭐 봤어?”
“너 뭐 봤어?” 계속 같은 어조로 물었다. 어머니가 회초리로 그의 종아리를 때렸지만, 그는 나무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예수님은 너를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셨어.”
“난 부탁한 적 없는데.” 그가 중얼거렸다.